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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10.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22

2024.5.10 이원문 <오월의 등잔>

오랜만에 새벽시장에 갔습니다. 아버지 기일이 석 달 가까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엄마는 아버지를 대접할 준비를 시작하십니다. 그 시작은 좋은 생선이 나올 때 사서 잘 건조해주는 것이지요. 늘 그렇지만 새벽시장 상인들의 부지런함, 질서정연함, 투박한 말씨 속 솔직함 등을 배우러 엄마와 동행하는데요. 걷기가 힘들다 하셔도 막상 시장에 들어서면 엄마도 이곳저곳 들여다보기 바쁘십니다. 주머니에 있던 돈 십만원이 언제 나갔는지 모르게 빠져 나가지요. 요즘 먹거리 물가의 기본 단위가 달라져서 돈의 가치는 하염없이 떨어져있구요. 꼭 필요한 것에만 소비지출을 해야만 그나마 살림을 하는 사람 속에 끼워집니다. 저도 지나치게 외식이 많은 편이지만, 밥 한끼라도 집에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가족들 덕분에 이렇게 시장 나들이의 기쁨을 알고 사네요. 오늘 점심은 저희 부부를 위해서 엄마가 챙겨주시는 특별 생선탕을 고대하고 있답니다. 그 보답으로 무엇을 해드릴까 궁리하다가 딱 맞는 ‘어떤 일’을 생각했는데, 어찌 엄마가 동의하실지 모르겠군요. ~~ 하여튼 제 나이에도 엄마가 계셔서 밥이고 옷이고 챙김을 받는 호사를 누리고 복을 받습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또 ‘금요일’입니다. 주4일 수업을 하는 중등부 학생들의 즐거운 비명이 아직도 들리는군요. 중간고사 끝나고 딱 한 달 맘 편한 오월. 숙제도 가능하면 덜 내라고 선생님들께 말하지요. 오월 주말마다 푸른 나무 아래 벤취에 앉아서 음악도 듣고, 하늘도 보고, 푸른 잎으로 온 몸을 가린 나무들의 속도 들여다 보라고 말했지요. ‘혹시나 군것질이 필요하면 이쁜 말 한 구절 톡으로 보내는 사람에게 선물쏜다’ 라고도 했지요. 귀염떨며 아름다운 시 한 구절 찾아서 보내는 학생에게 무제한 쏠 수 있는데 누가 할까요... 기다려보면 누군가 있겠지싶어 선물 쏠 준비에 손가락이 간질거리는 아침입니다.^^ 이원문 시인의 <오월의 등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오월의 등잔 – 이원문    

 

바늘 귀에 실 못 끼어

실 끼어 달라 하는 어머니

눈이 침침하다 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눈꺼플 자꾸 내려 오셨지요    

 

옷가지 양말떼기

튿어지고 찢어진 옷

어머니의 옷은 언제 꿰메 시렵니까

어둡다 등잔 심지 올려 코 까맣게 끄을린 어머니     


꿰멘 옷 안 입는다

우리들의 그 투정

그 투정에 어머니는

몇 번의 쌀독을 들여다 보셨는지요     


긴긴 해의 오월 들녘

논밭 일 저녁 밥상 걱정 되셨지요 

식구들 반찬 투정에 이것 저것 내놓아라

할머니의 눈초리는 어떠하셨는지요     


몸살에 아파도

지친 몸에 힘들어도

그 몸에 우리들이 더 걱정 되었던 어머니

오월 등잔의 짧은 밤 먼동에 새날이 밝아 오고 있어요   

 

 

이팝꽃이 백설기 떡 가루처럼 떨어지네요... 잠시 서 있으니 흰 꼬깔하나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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