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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09.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21

2024.5.9 조용미 <꽃 핀 오동나무 아래>

책 한 페이지 읽어 나가기가 점점 어려운 시력이 안타깝네요. 바람에 흔들거리던 말랭이 언덕 주인장인 연보랏빛 오동나무가 생각나서 꽃 시를 읊은 책을 읽는데요, 눈이 하도 시려서 읽다 멈추다 를 반복하거든요. 제아무리 건강해도 시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봄을 건너자마자 초여름을 대표하는 꽃으로 오동나무 꽃과 등나무 꽃이 있지요. 말랭이 마을 입주하던 해, 처음으로 자세히 본 오동나무꽃을 매년 기다리게 됐어요, 곧고 매끈하며 윤기가 나고 뒤틀림이 없는 나무의 성격으로 옛날에는 시집가는 딸의 장롱도 만들고 악기도 만들었다는 나무. 호리병 같기도 하고 작은 종 모양 같기도 한 통꽃. 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면 꽃들이 등갓을 쓰고 비추듯이 금새 마음이 환해지구요. 마치 동백꽃 떨어지듯, 땅에서도 다시 또 오똑하게 피어나는 모습이 참 아름답지요. 특히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에도 얼마나 의연한 자태를 보이는지... 제 눈에는 유독 예뻐서 언제나 운전을 멈추고 그 곁에 머물곤 합니다. 커다란 잎을 가진 오동나무잎이 가을이 온 신호를 가장 먼저 알려주며 떨어진다 해서 ‘세월의 독촉’을 상징하고, 이는 학생들에게 때를 놓치지 말고 학업에 매진하라고 강조할 때 이 나무를 비유했다 하네요. 가을이 오면 다시한번 이 나무를 아침편지에 올려드리고 싶군요.^^ 설마 등꽃 냄새가 이곳까지 오겠어? 라고 생각하는 데, 실제로 집 앞 칠성사(절이름)를 드리운 등나무 꽃은 그 향기가 멀리 퍼진다해요. 요즘에는 워낙 꽃들의 종류도 다양하고 사시사철 피어나니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지만 꽃시 책에 실린 등나무꽃 이야기에 따르면, 고향을 그리는 대표적인 꽃이었다네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보다 더 많이 고향마다 피어났던 꽃이랍니다. 여름으로 가는 길에 핀 수수하고 어느 나이든 여인의 수줍는 웃음 같은 이 꽃들이 생각나서 몇 자 적어보는 새벽입니다. 어느 한 철 귀하지 않은 시간이 있을런지요. 그냥 다니지 마시고 시력이 청청하실 때 많이 눈에 담아두시면 마음 또한 절로 꽃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조용미시인의 <꽃 핀 오동나무 아래>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꽃 핀 오동나무 아래 – 조용미     


꽃 핀 오동나무를 바라보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하다

하늘 가득 솟아 있는 연보랏빛 작은 종들이 내는

그 소릴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오동 꽃들이 내는 소리에 닿을 때마다

몸이 먼저 알고 저려온다

무슨 일이 있었나 내 몸이

가얏고로 누운 적이 있었던 걸까

등에 안족을 받치고 열두 줄 현을 홑이불 삼아 덮고

풍류방 어느 선비의 무릎 위에 놓여

자주 진양조로 흐느꼈던 것일까

늦가을 하늘 높은 어디쯤에서 내 상처인 열매를

새들에게 나누어 준 적도 있었나

마당 한켠 오동잎 그늘 아래서

한세상 외로이 꽃이 지고 피는 걸 바라보며

살다 간 은자이기도 했을까

다만 가슴이 뻐개어질 듯

퍼져 나가려는 슬픔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꽃 핀 오동나무 아래 지나간다

무슨 일이 있었나 나와 오동나무 사이에

다만 가슴이 뻐개어질 듯

해마다

대낮에도 환하게 꽃등을 켠

오동나무 아래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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