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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12.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24

2024.5.12 채전석 <엄마생각>

‘할머니는 되기 싫은데...’ 결혼하고 자식을 둔 여인들은 아마도 한번쯤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남자들이 ‘할아버지 되고 싶다’라고 성화를 부리진 않겠지만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할머니’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데 제법 긴 호흡이 필요한 듯 합니다. 어제도 전주와 군산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지인들과의 대화에 ‘할머니 되는 나’가 있었거든요. 늦게 결혼한 저 같은 경우는 자식이 빨리 결혼해서 얼른 부모로서의 책무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크지요. 요즘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6퍼센트 대 라고 하는데요,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게다가 아이 출산을 거부하는 사회현상에 심각한 걱정과 우려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들은 결혼하면 좋겠고, 딸은 혼자살아도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이 이중적 모순에 저도 한자리 하고 있으니...~~ 갑자기 얼마 전 어버이날 친정엄마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점심을 드시고 지나가는 자리에 소나무 솔순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을 보셨죠. 저 솔순을 따서 여러 가지 건강약으로 잘 활용할 수 있다면서 이런 말을 하셨어요.

“대죽같이 굳은 마음 송죽같이 절개지키며 살아라”

라고 했다면서 당신 초례상에 올려졌던 닭과 대나무 솔나무를 떠올리시더군요. 예전에는 하늘을 지붕삼고 땅에 발 딛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부부됨을 약속하니 이혼도 없고 자손도 번창했는데, 요즘은 상자속(결혼식장 지칭)에 들어가서 하늘도 땅도 안 보이는 곳에서 결혼해서 그런가 자식을 안 날려고 해서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듣고 보니 귀에 쏙 들어오는 말씀이어서, 당신 손자가 결혼한다면 하늘도 땅도 보이는 곳에 대나무랑 솔나무랑 놓고 하겠다고, 엄마 말씀이 천번 만번 딱 맞는 말씀이라고 엄청 칭찬해 드렸답니다. 이런 결혼을 한다면 후에 ‘할머니’소리도 정말 아름답게 들릴까요?? ^^ 공교롭게도 어제 지인들의 대화와 밤 중 읽었던 모 에세이의 주제가 일치해서 새벽부터 수다 떨어보네요. 이제 아침운동 좀 하러 나가야겠습니다. 오늘도 하늘도 땅도 보면서 자연의 기운을 듬뿍 담아보세요. 채전석 시인의 <엄마생각>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엄 마 생 각 채 전 석      

사방공사에 나가 배급받은 밀가루

마지막 남은 밀가루를 긁어모아

한 줌 남짓한 수제비를 끓이며

엄마는 물 한 바가지를 더 부으셨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한 그릇씩 푸고 나면

엄마 몫은 건더기 없는 멀건 국물

그마저 어느새 다 먹고 숟가락 빨고 있는

우리 그릇에 부어주고

찬물 한 사발로 저녁을 대신 하신 엄마


소쩍새 소리에 밤은 깊어가고

모깃불 연기 사이로 둥근 달은 서럽게 밝은데

어린것들 주린 배를 양껏 채워주지 못해 서러웠던 엄마는

"참말로 동그란 것이 노릇노릇 잘 익은 부침개 같구나"

달을 보며 한숨처럼 말씀하셨다


그 밤 늦도록 울던 소쩍새는, 잘 익은 부침개는

엄마의 짧은 여름밤을 얼마나 더 짧게 만들었을까?


이제는 배고픔 견디려 먹지 않고

맛을 즐기려 먹을 수 있는 데

양(量)을 늘리려 물을 더 붓지 않아도 되는데

어찌 그리 서둘러 가셨어요

서럽게 지은 자식농사 뒤끝도 보지 않으시고요

이젠 알아요

어머니는 피와 살(肉)로 밥상을 차리셨음을

내가 그 피와 살을 먹고 자랐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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