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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15.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27

2024.5.15 이승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울려퍼진 시낭송 15수. 배움에는 끝이 없다 하더니, 정말 그 말이 맞나봅니다. 어제는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시 낭송 무대에 올라갔지요. 물론 저는 암기를 못해서 낭독의 형태로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서요. 아침부터 약속된 일들이 줄줄이 있어서, 발표할 시- 이해인시인과 이문희시인의 <오월의 시>-를 제대로 연습도 안하면서 두 개나 준비한 이 무모함은 어디에서 나온 야욕이었는지... 하여튼 함께 낭독한 지인 덕분에 즐겁게 발표했답니다. 가정의 달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시 낭송의 주제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였습니다. 참석하신 어르신들께 카네이션도 달아드리고, 무한한 사랑의 인사로 시작한 한시예 회원님들!! 낭송한 시 중 기억에 남는 시 3편이 떠오릅니다. 낭송가들이 낭송모습은 마치 한편의 네거티브 영화 필름이 영사기 안에서 돌아가면서 멀고 먼 옛날의 어머니가 각기 다른 모습과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듯했습니다. 이승하 시인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문정희시인의 <어머니의 편지>, 정채봉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입니다. 정말 감동적인 낭송무대였습니다.

행사 후 저녁 사춘기를 겪는 어느 중학생과의 상담에서 학생에게 ’엄마 아빠의 심정‘을 얘기하면서 들었던 시 한편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죠. 신기하게 학생의 눈빛이 단번에 적셔져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모른체 하고 손을 잡아주면서 말했죠. ’네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마 알게 될거야. 너는 똑똑하니까‘

시가 지닌 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시가 보여주는 사랑의 힘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우리 안에서, 마치 바닷물결이 스며든 물고기처럼 존재하니까요. 저는 오늘도 친정 엄마랑 새벽 목욕을 갑니다. 엄마의 몸을 만지는 이 행복이 오래가길 기도할 뿐입니다. 이승하 시인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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