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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16.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28

2024.5.16 안도현 <화암사, 내사랑>

불가용어 ’보시(布施)’는 ‘널리 베풀다’라는 뜻이지요. 부처님이 설파한 ‘자비’의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푼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사랑, 유교의 인(仁)의 마음과 차이가 없으리라 봅니다. 무엇을 베푸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불가에서는 이렇게 말하네요. 석가의 가르침(진리)를 가르쳐 주는 법시(法施), 재물로써 베푸는 재시(財施), 두려움과 어려움으로부터 구제해 주는 무외시(無畏施)로 구분한다 합니다. 해마다 석가탄신일에 많은 사람들이 절에 가서 축하의 마음을 현물로서 보시하는 것이 상례처럼 보이는 현실. 진정한 보시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하지만 또 세상살이에 재물보시가 없으면 할수 있는 일들이 많이 줄어들겠지요.


 어제 우연히 백제 천년사찰 화암사(완주군 불명산 소재)에 갔는데요, 깊고 높은 산 속에까지 사람들이 참 많이도 와 있었습니다. 소위 ‘절밥‘을 보시받아 맛있게 점심으로 먹었네요. 절의 보살들께서 준비하시느라 애쓰셨다 생각했어요. 원하는 사람들에게 다 무료로 나눠주시며 미소로 화답해주시더군요. 마치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 같이 보였답니다. 


불교와 캐톨릭 지도자들이 대중앞에 함께 나와서 서로의 종교에 대해 칭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마도 이 두 종교는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종교‘의 참뜻을 알고 있어서 그럴거라 봅니다. 자연을 두루 구경하러 간다고 절에 가시는 관광객들이 많으시죠. 혹시라도 그곳에 가시면 최소한의 예를 갖춰 경내에서 소음을 삼가는 것 정도라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곳에는 수천 년 동안 울고 웃었던 사람의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종교 경전보다 더 중한 것은 바로 ’사람의 소리’아닐까요. 


화암사에는 안도현 시인의 시도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화암사를 두고 ‘잘 익고 잘 늙은 절’이란 수식어로 더 유명해졌다 해요.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겠다는 시인의 속 마음을 저도 알아 차렸습니다. 인간세에 있던 햇빛의 차가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훨씬 더 빨리 그 길을 찾을수 있을테니까요. 함께 간 지인이 말했지요. ‘고즈넉이 우화루앞 옷깃 여미니, 극락전 풍경소리 미망을 깨우노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다보니 나왔던 화암사. 특별한 날, 특별한 선물을 받은 하루였습니다. 안도현시인의 <화암사, 내 사랑>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화암사내 사랑 안도현    

 

인간 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 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참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 주지는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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