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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17.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29

2024.5.17 곽재구 <계단>

‘드는 자리는 몰라도 나는 자리는 안다’고 하지요. 밀려왔다 가버리는 바닷물결의 흰 포말을 보면서 왠지 마음 한쪽이 시렸는데요, 그렇다고 모든 인연을 다 붙잡을 수도 없으니 ‘언제나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자.’ 라고 스스로 마음을 곧추 세웠답니다. 잠시 ‘비워진 자리’를 밤새 들여다보며 새벽 빛에게 빨리오라고, 어서와서 나를 깨워주라고 속삭이다가 잠든 듯, 그러다가 늦잠을 잤네요. 이쁜 딸의 전화가 아니었으면... 어젠 학원 선생님 한 분(20년 근무)이 처음으로 휴가를 요청했어요. ‘얼마든지 다녀오세요. 선생님이나 저나 이젠 시간이 많지 않아요. 여행가고 싶으실 땐 무조건 떠나세요.’라며 허락한 후, 그분 반 수업까지 하느라 쬐끔 힘들었죠. 예전 같으면 한 번에 8시간 연속강의를 한 적도 있었는데, ‘예전엔 말이야’라는 수식어를 다는 것 보니 ‘아이고야, 이젠 나도 별수 없구나’ 하는 고백에 이릅니다.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니, 마음이 넘치는 열정을 다스려서 이젠 몸에 맞추어 살아가야 겠구나 싶군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몸과 마음사이의 Gap이 커지는 일이지요. 점점 그 간격이 커짐을 받아들이는 일, 흘러가는 세월의 강물을 건너가려 하지 말고 흐름에 맞추어 기대보는 일. 그러다보면 작은 돌멩이 하나도 강물이 맘대로 움직이게 하지 못하는 이치를 알게 되는 일. 오늘도 그 소소한 작은 일들부터 제 마음 속에 한 줄 한 줄 새기는 하루가 되길 바랄뿐입니다. 일은 많지만 마음이라도 가벼운 금요일, 이 새벽의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여마시며 잔잔히 위로합니다. ‘들어온 생각을 다 해야 된다고 추궁하지마.’라고요. 곽재구시인의 <계단>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계단 – 곽재구     


강변에서

내가 사는 작은 오막살이집까지

이르는 숲길 사이에

어느 하루

마음먹고 나무계단 하나

만들었습니다.

밟으면 삐걱이는

나무 울음소리가 산뻐꾸기 울음

소리보다 듣기 좋았습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이 계단을 밟고

내 오막살이집을 찾을 때

있겠지요.

설령 그때 내게

나를 열렬히 사랑했던

신이 찾아와

자, 이게 네가 그 동안 목마르게 찾았던 그 물건이야

하며 막 봇짐을 푸는 순간이라 해도

난 당신이 내 나무계단을 밟는 소리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신과는 상관없이

강변 숲길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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