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8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내 책상위에는 최소 3그룹의 필기구 통이 있다.
하나는 연필류, 다른 하나는 볼펜류, 나머지 하나는 형광펜류이다.
그 중 연필통은 사프펜슬과 나무연필이 섞여있다.
나이 들수록 매사 생각이 느려지고 눈이 투명하지 않다. 글쓰기는 몸의 근육, 그 중에서도 손의 근육을 키우는 거라 하는데, 손으로 직접 글을 쓰기는 여간 쉽지 않다.
블로그 이웃들 중 “필사”를 하시는 분들의 얘기가 가장 와 닿는 이유이다.
그러나 내가 즐겁게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연필 깎기’이다. 연필로 글을 자주 쓰는 것도 아닌데 연필만 보면 그냥 깎고 싶어진다. 요즘 학생들은 거의 사프펜슬, 그것도 made in Japan이 써 있는 사프펜슬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무연필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은 눈에 띌 수 없다.
학생들이 영어쓰기수업을 할 때 가능하면 볼펜 대신 연필을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때때로 연필사용의 장점을 말하면 수긍하는 몇몇 학생들의 미소를 보면서.
오늘도 텅 빈 사무실을 나오니 바닥에 연필 한 자루가 떨어져 있다. 어제 필기도구 가져오지 않은 학생에게 빌려준 것인데, 갈 때는 그냥 갔나보다 했다. 또 깎았다. 사각사각 연필심 소리를 들으며. 연필통에 있는 다른 애들도 깨끗이 세수시키듯, 다듬어줬다.
‘연필로 쓰기 - 김훈’.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연필은 나의 삽이다’,
2부는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3부는 ‘연필은 짧아지고 가루는 쌓인다.’이다.
1부의 최고봉은 당연 ‘밥과 똥’이다.
밥 먹으면 똥 싸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특징이자 의무이다. 이런 말을 글로 표하기는 그렇지만, 요즘 나도 변기에 앉아 ‘볼일을 잘 보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로 떠올랐다. 과제는 꼭 해야 된다는 나의 모범학생 같은 사고에 이 일이 일번 순위로 올라온 것을 보면 확실히 나이가 주범인 듯싶다.
작가가 한 동물학자의 글을 인용했다.(P.37)
- 시방세계 억조창생과 모든 들짐승 날짐승 길짐승, 바닷속의 물고기와 거북이, 풀 속의 버러지 들이 창세기 이래로 무시무종 하게 내지르는 모든 똥 중에서 최상위 포식자의 똥이 가장 더럽고 구리다
(이배근, 야생동물이 남긴 소중한 흔적 “똥)-
그런데 최근에는 이 최상위 포식자의 지위를 넘어서려는 종이 나타났으니 바로 ‘반려견’을 포함한 반려동물이란다. 반려견의 먹이종류, 거주형태, 반려에 필요한 수 많은 엑서서리를 생각해보면 ‘반려’라는 말이 그저 한낱 동물에게 붙이는 수식어가 아니다.
똥만 해도 그렇단다. 어느집 반려견인지 똥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름지고 찰진 똥을 눈 개를 보면 그 주인의 신분이나 재정상태를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인간의 똥 오줌을 관찰 분석해서 ‘대변’편에 썼다. 음식을 삭지 않고 그래로 나오는 날똥부터 색깔별로 구분해서 푸른, 붉은, 노란, 검은, 흰 똥들은 모두 병든 똥이라 썼다. 이 모든 똥의 문제는 외부에서 ‘사악한 기운’이 몸이 침범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오늘 새벽, 변기에 낮아 다시 한번 ‘밥과 똥’에서 나온 일부 글을 곰씹어봤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반드시 행위 하는 것. '먹고 싸는 것’
이 원초적인 본능을 두고도 인간은 스스로가 쓴 두터운 장막 속에서 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마지막 여정 길에 올라가면, 그때서야 다시 되돌아가는 행위. 그때서야 누구나 인정해주는 본능이 오늘따라 서글퍼진다.
2부에서는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를 다시 읽는다.
작년에 텃밭에 호박을 키우면서 친정엄마의 소담스런 말 표현을 써서 글을 보내니 모 월간지에서 소개되었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엄마는 ‘당신의 말이 재밌다’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서 자극을 받았는지, 만날 때마다 내 글감으로 쓰라고 별의별 말씀을 다 하셨다. 물론 평소 때 하던 말이긴 했지만 내 입장에선 그것을 다 기억하고 써 놓은 일 또한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추천한 책이 순천할매들의 시 이야기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이었다. 엄마도 천천히 읽어보고, 하고 싶은 말, 무조건 써 놓기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숙제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엄마는 하나도 안했다. 그냥 나한테 말을 한다. 내 몫이라고.
- 여자가 글을 배우면 친정에 편지질해서 시댁을 흉보고 고자질한다는 이우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연. 식당메뉴, 간판, 면사무소 고지문, 동네버스 정류장 이름도 읽지 못하는 사연을 가진 문맹의 노인들이 80살에 가까워서 한글을 깨쳤다 - (P.263-264)
내 엄마의 섬마을에서도 흔히 있었던 일들이다. 다행히도 엄마는 국민학교를 마쳐 그때 배운 한글로 식당메뉴, 동사무소 고지문은 물론이고, 당신 이름을 한자로도 쓸 줄 아신다.
鄭正子(동래정, 바를정, 아들자).
평생교육을 부르짖는 이 시대에 민관 할 것 없이 나서서 고령의 문맹 할머니 할아버지 에게 한글을 깨우치게 해준 것은 대한민국의 교육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고 한글창제자인 세종대왕이 벌떡 일어나 칭찬 할 일이다.
3부는 ‘새들이 왔다’가 눈길을 끌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 까지만 해도 군산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응당 “해양도시, 바닷가, 선창”등이었다. 그러나 노태우가 태통령 되겠다고 유세하면서 군산을 둘러싼 그 넓은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준다는 공약을 했다.
그 이후 30년이 넘도록 바다는 인간의 욕심과 맞물려 흙으로 채워지고 채워져, 소위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자랑하는 새만금다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안쪽으로 금쪽같은 육지라고 말하고 싶은 자들에 의해 ‘새만금’이란 땅이 생겼다. 당연히 김정호가 그렸던 대동여지도의 모양도 바꿔졌다. 이 땅의 부당함을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일단 접고 새 얘기를 하련다.
군산에도 해마다 찾아오는 철새(가창오리, 쇠기러기, 청둥오리 등)로 한때 철새축제도 있었다. 어느 날 조류독감으로 인해 축제는 유야무야 사라졌지만 철새는 세력을 달리해서 제 선두들이 뿌려놨던 향기를 맡고 온다.
김훈 작가 역시 한강 하구로 날아온 겨울새들의 비행대열을 보고 감탄했다.
-금년에 오는 새떼들이 작년에 왔던 그 새떼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렇기를 바란다. 새들은 30-40마리 씩 편대를 이루어 날아오고 날아가는데, 이 비행편대의 선발기준과 구성원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궁금하다. 그 구성원들은 어떤 동기나 친소관계로 모이고 또 헤어지는가. 올 때와 갈 때의 패거리가 같은가. 편대장은 누가 되는가. 편대장의 힘과 지도력을 보고서 휘하로 들어가는가. 아님 편대장이 스카우트 하는가. 새들을 들여다봐도 나는 모르겠다. -(p.435-436)
별첨으로 말하길, 나는 새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 아시는 분들이 가르쳐주길 바란다 라고 했다. 이 책이 2019년도에 나왔으니, 이미 새 박사들이 작가에게 친절히 알려줬으리라.
혹시라도 아직도 모른다면, 우리 군산의 민간단체, 20년째 새만금의 역사를 바라보며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항거하고 있는 ‘새만금생태조사단’에게 물어보라.
김훈작가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쓰면 좋겠지만 그 정도의 능력은 불가하여, 유독 눈에 들어온 단편에 대한 독서평을 썼다. 책 읽는 분들이여, 꼭 읽어보시라. 영원한 아날로그 김훈의 ‘연필로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