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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30.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42

2024.5.30 이문재 <오래된 기도>

월말이라고 금주는 유독 일이 많아 다소 지친 상태로 있으니 자꾸 단 것이 당기더군요. 급기야 밤 11시경에 돌아와서도 밥 한 숟가락을 떴답니다. 밤새 불편할 줄 알면서도요.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네요. “엄마, 배고파도 늦은 밤에 밥 드시면 안돼요. 몸이 부으면 다 살로 가고, 가볍게 물만 드세요.”라고 얼마 전에도 말씀 드렸거든요. 이제 생각하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싶어요. 밥 먹을 힘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모습인데...      

지인께서 치매환자 교육을 받을 예정이라는 말에 저도 또 하고 싶다고 했어요. 코로나시기에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했는데, 요즘은 그 교육과정에 치매환자를 위한 교육까지 받는 것이 필수라고 해서요. 어느 교육기관을 다니면서 해야 하는 거라면 다소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교육이 온라인시대에 맞춰져 있으니, 커피 한잔 마시며, 책 한 줄 읽는 맘으로 수강하고, 미리 대비할까 해서요. 알고 있음이 도움이 될 때가 있겠지요.     


창 밖 새들은 무슨 말들을 저렇게 많이도 하는지, 제가 자기들의 말소리를 엄청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오늘따라 더 소리높여 수다를 떱니다. 어제 오전 책방 촬영을 한 피디께서, 이런 질문을 했어요.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저는 하루살이예요, 그렇게 매일 아침 태어나고 내일 저녁 소멸하고, 또 다음 날 다시 태어남을 감사하고 살아요. 아침편지를 쓰는 행위도 매일 태어났다는 저만의 증거인 셈이죠.“ 

”그럼 혹시나 한달 뒤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은요?“

”특별한 욕심이나 계획하지 않아요. 예전에 애들이 어렸을 때는 오로지 아이들이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매일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니,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미리 다 유언하고 있는 셈이죠. 오늘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예요.“     


이렇게 답한 저는 오늘도 눈을 떠서 편지를 쓰니, 하루살이의 삶이 절반은 성공하면서 시작합니다. 오늘은 인생의 선배님들과 점심약속이 있는데, 그분들의 얘기를 듣는 재미에 귀를 많이 열어두고 지혜로운 것들만 쏙쏙 빼어 담아두렵니다. 이문재시인의 <오래된 기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이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만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책방 앞 감자씨가 꽃을 맺었으니... 
지인께서 그려준 시화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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