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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29.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41

2024.5.29 강리원 <세월> / <TV 베개>

괜스레 장난을 걸어보았죠. “얘들아, 난 역시 학원에서 너희들 만나는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 너네도 나랑 같은 맘이지? ^^” 여학생들은 그래도 눈치 빠르게 대답하는데, 남학생은 대답이 없어요. 그래서 다시 너스레를 떨었죠. “아들아, 나는 00이가 제일 좋더라. 그러고보니 우리 인연이 엄청 길다. 대학생인 네 형부터 만났으니. 너도 이 시간이 제일 좋지?^^” 그제서야, 슬며시 웃으면서 ’네 네‘라고 답했죠.      


어제도 아침부터 바쁜 일정을 끝내고 학원으로 복귀하니, 맘이 그렇게 편해지는 거예요. 역시 이곳이 내 땅이구나 싶은 평화가 밀려오데요. 계란도 삶아 놓고, 녹차를 진하게 마시면서 오전에 있었던 행사를 복기했지요. 첫 시집을 낸 시인의 출간회. 그녀는 감동스러워 하면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자기소개도 하고, 어제가 있기까지 그녀 삶의 한 자락에 인연이 된 모든 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시 낭송가인 시인이 직접 자작시를 낭송할 때는 눈을 감고 들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제가 맡았던 책무 하나가 끝났습니다.   

  

오늘은 책방촬영을 하고 싶다는 분이 있네요. 책방의 지리적 특성 덕분에 영상으로 제법 홍보가 되는데요, 이왕이면 외형이 아니라, 책방주인이 책방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잘 들려주었으면 하는 맘이죠. 그러고보니 ’시나눔 문화운동이란 제목으로 좋은 시를 공유한지 벌써 5년입니다. 시필사, 시낭송, 동시짓기, 시화캔버스 만들기, 시엽서 보내기, 시인과의 대화, 시집출간에 이르기까지,,,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던 제가 공공의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고 있는 셈이지요. 제 머릿속에는 또 다른 아이디어가 있기에, 당분간 시 나눔운동은 지속될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저 하나라도 매일 ‘시 한편’을 만나는 일로 수신(修身) 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넘치는 복이지 싶어요. 오늘도 강리원시인의 시를 들려드리고 싶은데요, 칠순의 시인께서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강리원시인의 <세월> <TV베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세월 강리원     


그리운 저편

단아한 모습 변함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 내 어머니

홀로 가슴 시린 밤

소슬한 바람에 옷깃 여미고

집 앞 개울가 따라

하얗게 부서지는 달빛 아래서

솔베이지 노래 즐겨 부르시던 님

그리는 듯 고운 손길 머물던

애틋한 사랑, 

다시 볼 수 없어 

그리움만 바람결에 흔들리는 날  

   

거울 앞에 앉은 내 모양이

어머니 곁에서 낙엽을 닮았구나  


        

TV 베개 강리원    

 

TV를 보다 잠드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TV를 켠 채 잠을 청하는 것이다

사람 소리 끌어다가 이불로 덮고

외로움이라는 낱말 데려와 함께 잠든다

나이 들어가는 일 차곡차곡 쌓여

무겁게 돌아눕는 아버지

늙으신 등이 가볍게 느껴질 때

한낮의 해는 사선으로 내려앉고

무작정 사람이 그리운 나도

곤히 잠든 아버지 옆에 모로 누워

TV를 베고 잠을 부른다   


       

하이분 (제 2장 1)   

       

돋보기 찾네 

거울에 언 듯 비친 

내 머리 위에      



    

언제부터인가 돋보기 놓아둔 곳을 잊어버리고 찾는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어제는 컴퓨터 작업을 하려고 돋보기를 찾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고 보이지도 않더라고요. 한참이나 집 안 구석구석 애타게 찾다가 무심코 화장대 앞을 지나가는데 기가 막힐 내 모습을 보았답니다. 그렇게 찾던 돋보기가 내 머리 위에 얌전히 놓여 있다니. 철렁했던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사과나무꽃 향기를 보다>를 낭독하시는 강리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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