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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31.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43

2024.5.31 박지웅 <꽃들 > <습작>

새벽부터 슴슴하게 다가오는 오월의 초록향. ‘아, 벌써 오월도 가는구나!’라는 얇은 탄식을 묻어주네요. 평소에도 바삐 사는듯한 제가 이번 오월엔 더 종종거리며 바빴답니다. 출판사로서 두 명의 작가님들도 소개하고요. 새로운 책방손님들과의 인연도 쌓고요. 중간중간 알게 모르게 짧은 여행도 하고요. 당연히 본업에 충실히 살았구요.     

사실 저는 ‘새날이야’ ‘끝날이야’ 라며 어떤 날에 이름표를 매달아서 더 특별한 감정으로 움푹거리진 않는 성격이예요. 생각의 중심이 워낙 단단한 편이라, 특정한 날들이 요동을 쳐도 제 자신이 그들을 따라가진 않지요. 오히려 그들이 저를 찾아오게 만드는 고집이 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달력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31일이라는 숫자를 보니 다른 때와 달리 오월 전체를 되돌아보게 되네요. 후회없이 재밌게 살아온 오월. 고맙지요.     

오늘은 저녁 7시부터 줌으로 만나는 시낭독 시간이 있는데요, 장시간(아마도 3시간 이상)동안 인문지성인들의 대화를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박지웅 시인의 시집<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에 써 있는 시 전체를 낭독하는 독자들과 시인과의 만남이지요. 오늘은 또 어떤 시가 어떻게 이해되고,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이전에 이 시인이 쓴 산문집 <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테니>라는 책으로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본 일이 있는데요. 삶의 바닥과 곁을 이루는 수많은 ‘당신‘과 ’나‘ 사이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따뜻하게 쓴 글이었습니다. 읽어 본 시들은 상당히 난해한 것들이 많았지만, 여러 독자들의 소리로, 시인의 주석으로 만나다 보면 어려운 것도 풀어지겠지 싶어요. 그래서 오늘은 박지웅 시인의 시 <꽃들> 과 <습작>이란 시를 들려드립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꽃들 - 박지웅     


발목을 무는 꽃이 있다     


땅을 기어다니는 이 꽃은

혓바닥이 갈라져 말이 오락가락한다   

 

이 꽃에 물리면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몸속에 한번 꽃의 피가 섞이면

절룩거리며

꿈에서 꿈으로 옮겨 다녀야 한다     



습작 - 박지웅     


오래도록 첫 줄을 쓰지 못했다

첫 줄을 쓰지 못해 날려버린 시들이

말하자면, 사월 철쭉만큼 흔하다

뒷줄을 불러들이지 못한

못난 첫 줄이 숱하다

하늘가에 흐르는 물결 소리

기러기처럼 날아가는 아득한 첫 줄

잡으려 하니 구부러지는 첫 줄

읽으려 하니 속을 비우는 첫 줄

하늘을 통째로 밀고 가는

저 육중한 산줄기

오랫동안 그 첫 줄을 잊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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