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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n 16.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59

2024.6.16 박금리 <다시 배우다>

한때는 대파값 양파값이 하늘높이 치솟더니,,, 장미 시작되기 전 요즘은 채소들이 낮은 값으로 먹거리대열에 앞장서 있어요. 가당치도 않은 농욕(農慾)까지 부려 텃밭 한 조각을 일구지만, 시장에서 만나는 채소들은 어찌나 매력적인지요. 이들이 어디에서, 어떤 과정으로 길러졌을지라도, 씨앗이 뿌려져 결실이 나온 것은 분명하니 농사짓는 이의 땀과 마음이 가득 들어 있을거예요. 설마 AI가 씨앗이 되어 열매채소, 잎채소가 되어 나오진 않았을테니까요. 지인들께서 오며가며 주시는 상추잎, 깻잎, 이름모를 잎채소, 오이, 양파, 당근, 갖가지 열매채소. 여름 작물들이 빈곤해질 때를 생각해서, 건강에 좋다면서 자주 먹습니다.     


어른들 말씀에 모 심어 놓으면 일년이 다 간다 하더니, 한달 전만 해도 삐쩍삐쩍 갈라져 거북이 등 껍데기 같았던 논에 양수기와 이앙기(모심는 기계)의 동력이 가세했었지요. 숲속의 초록잎을 보며 산소를 들어 마시듯이, 도로가 논에 심겨진 반듯반듯한 어린 푸른 모들을 보면 이 또한 섬세한 산소방울들이 들어오는 듯 하지요. 동시에 마음 속으로 어른들 말씀을 따라 ‘일 년 다 갔네’ 라고 중얼거리기도 해요.     


하루종일 제 자리에서 꼼짝도 안하고 저를 기다린 복실이를 데리고 하구둑 들판으로 가는 길, 가는 곳마다 아파트가 세워지느라 사라지는 논밭의 말로가 보이죠. 그나마 끝까지 버티고 있는 논이 있다면 일부러 눈길을 주며 자라고 있는 모들의 미래에 축원 한마디 더해봅니다. 마음 속에 하고 싶은 어떤 일이 있어서, 왠지 홀대받는 땅 한 조각이라도 있으면 제대로 대접해줘야지 하는 맘이 절로 생기기도 하구요.

오늘은 평화로운 날, 각자의 믿음으로 기도하는 날,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다면, 후손들에게 남겨질 땅이 빈약해지지 않도록 두 손도 모아보시게요. 박금리시인의 <다시 배우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다시 배우다 박금리     


나를 기르는 것에 오만하여

남도 키워볼까

농사꾼의 이름으로

밥이 되는 나락도 심궈 보고

사이사이 간을 맞춰주는 찬이라도 되어 보라

채마밭 갈아 씨 심기를 하지마는

내 심신 번듯이 길러 놓지 못하여

남을 가꿔 보는 일 또한 여의치않아라

서녘 하늘에 천둥이 치고

눈앞에 번개가 왔다니 갔다니

농사 깁던 들녘을 수놓아 짓는데

나와 다른 것들이 그 아래 있고

우린 그동안 길러지고 있었구나

하늘 안 딴 이치에

농사를 다시 배우다

빈 의자에 앉아 우연히 벌들의 사랑을 들여다보는 민망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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