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
전주의 동네 책방 '잘 익은 언어들' 주인장 이지선님이 책 한권을 추천해주었다.
'다독임(by 오은)'
여러권을 한꺼번에 읽다보니 책을 가져온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수필형식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쓰는 요즘, 시인 오은은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했다.
'뭉근한 다정함으로 위로할 줄 아는 시인 오은의 '마음'을 끄덕이게 하는 이야기!'
책 리본에 써 있는 말이다.
'한낮의 다독임에는 늘 '말'이 있었다.'
'한밤의 다독임에는 늘 '책'이 있었다.'
다독임에 들어있는 감성과 말!
따뜻해, 네 편이야, 괜찮아, 기대어도 좋아, 같이해, 나도 슬퍼, 늘 여기에 있을께, 잘 될거야...
톡 톡 톡. 다독임에 들려오는 위로의 소리가 한장 한장 책을 넘기게 했다.
이 책은 2014년 부터 2020.3월까지 작가의 다독임을 들려준다.
나는 처음으로 책을 거꾸로 읽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내 기억을 작가의 기억과 비교하면서.
-2020년-
다독이는 안녕(p.274) - 2020.3.19
'코로나19여파로 거리에 사람이 없다. 재택근무를 독려해서인지 붐비던 카페와 식당도 한산하다. 안녕하세요 라며 단골카페에 들어서니 사장님이 벌떡 일어선다. 요새는 파리도 안 날려요 라고 웃었지만 안색이 좋지 않다. 작금의 상황에서 혹시 안녕하세요 라는 말 속에 과도한 경쾌함이 담겨 있지는 않았을까. 파리는 원래 여름에 많이 날리잖아요 같은 몹쓸 농담을 던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얼마전 전주에 있는 동네책방 잘 익은 언어들에서 만난 일곱 살배기 친구가 내게 카드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삐뚤빼뚤하게 작가 선생님 사랑해요 라고 적혀 있었다. 안녕 이라는 인사를 주고 받으며 헤어지는데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그것은 다독이는 안녕 이었기 때문이었다. '
나의 3월 19일은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하고 일정을 보았다.
신기하게 내가 다독임을 받았던 시간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3월 개학을 한지 2주일째, 개원을 하면 뭔가 죄를 짓는 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아직 학교도 못가본 고1 학생들 수업. 학원이 너무 조용하다고 말하는 학생들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학생 중 하나가 말했다. "그래도 저희들이 있잖아요. 저희는 공부하고 싶어요"
진짜 눈물이 핑 돌았었다. 바로 나의 답례, "간식 먹자 얘들아"
-2019년-
기억은 '다시'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P.228) - 2019.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5년이 흐렀다. 전원구조속보, 오보뉴스, 수백명의 실종자. 사는 곳과 상관없이 우리는 한동안 팽목항에 마음을 보냈다. 당시 대한민국에 만연한 감정을 단순히 슬픔이라는 단어로 통칭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는 오히려 비탄아닌 통탄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은 구체화되고, 놀람은 어처구니없음으로, 무기력은 분노로 바뀌었다.'
'어떤 감정 앞에서 지겹다고 말하면 안된다. 슬픔이나 괴로움 앞에서 우리는 상대의 말에 집중해야된다. 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해야하는 일이자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감정은 보통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지지만 반대로 밀도가 높아기지도 한다.'
'기억은 힘이세다. 기억때문에 우리는 좌절한다. 아무리 애써도 기억은 쉬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기억이라도 남아 있어서 살아갈 최소한의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남은자는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과거의 자리에 미래를 포갠다. 그렇게 기억은 다시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나의 4월 16일도 세월호를 기억했다.
학생들과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면서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말자고 약속했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우리 어른들은 반드시 동참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그 때 만들었던 노란 리본과 노란색 종이배가 사무실에서 나를 바라본다.
- 2018년 -
곁(p.202) - 2018.7.31
'선생님 곁을 지키기 위해 곁에서 더욱 뜨거운 말을 전하기 위해, 곁에서 눈을 마주치고 함깨 호흡하기 위해. 누군가의 곁에 다가간다는 것은 나의 틈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시간의 틈을 벌려 여유를 만들고 공간의 틈을 빌려 그 사람을 나의 영역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곁을 주다는 말이 속을 터준다는 뜻인 것도 곁을 지킨다는 말이 믿음에 뿌리를 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곁이 비어 있을때 그리움의 감정은 커지고 곁이 많을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옆 이라는 말이 공간적 거리를 지칭한다면 곁 이라는 말은 그 안에 심리적 거리를 포함한다. 옆에 있다고 해서 다 가깝다고 느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곁에는 거리감 뿐만아니라 양감과 질감, 온도와 습도 같은 성질이 다 담겨있다.'
'살아가면서 곁을 잘 챙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삶을 살아있게 해주는 것도 곁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품고만 있고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곁에 두는 것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를 정말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이즈음 우리집에서는 남편이 두번째 발병을 했다. 첫번째 뇌출혈로 아픈지 딱 1년만에 다시 또 뇌경색을 진단 받았다. 아들은 재수생활 중 이었고, 딸과 나는 서울에 책 구경을 하러 갔었다. 가족 모두 처음보다 열 배는 더 놀랐다. 그 때 시신경에 상처를 입은 눈은 여전히 완전회복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는 안과의사의 전문성을 능가했다. 3개월 이상 심한 복시현상을 보였고, 얼마전 코로나로 퇴원을 할 때 까지도 한 쪽 눈은 늘 불편했다. 요즘은 본인이 운전도 쉬엄쉬엄 한다. 단, 운전할 때 음악 틀고, 전화하는 등, 운전집중도가 50퍼 였다면 지금은 100퍼센트이다. 천천히 회복 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도 나도 '곁에 있을때 잘 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시인, 오은!
다 큰 성인이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감성이 좋다.
책 구석구석 시인의 감정이 무지개색 스펙트럼으로 퍼져나가 책을 읽는 누구라도 그 빛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
글쓰기를 노력하는 나로서는 작가가 말하는 '나를 살리는 죽이는 글쓰기'도 내게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