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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l 17.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90

2024.7.17 박노해 <내가 살고 싶은 집>

간 밤, 퇴근길에 보았던 먹장구름, 그 체증을 다 쏟아내었는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군요. 눈을 뜨니 본래 하늘빛, 푸른 창공의 얼굴을 먼저 대하는 새벽이 싱그럽습니다. 혹시나 호우경보문자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 했거든요. 어쨌든 오늘은 소위 ‘여름 무더위’와 ‘오락가락 빗방울’이 겸상하며, 우리들 마음의 인내심을 살피는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어젠 유독 ‘일상(日常)에서 보이는 소소한 사물’의 아름다움을 느껴본 하루입니다. 책방에서는 ‘그림과 마음’을 주제로 한 수업이 있었는데요. 흔히 먹는 옥수수 한 대의 모습에도 오묘한 질서가 있음을 알고 사물을 직시, 관찰하는 자세를 배우면서, 곁들여진 양념수다의 참맛을 나눴습니다. 또 안도현 시인의 강좌를 들으면서 그 유명한 <스며드는 것>이란 시에서 간장게장을 왜 소재어로 썼는지, 시적 대상물은 어디에서 구하면 좋은지 등에 대한 조언도 얻었습니다.     


덕분에 곁에 있던 박노해 시집, 이해인 시집을 후다닥 몇 편을 읽어보면서 잠시 세정하고 학생들을 만나니, 제 얼굴이 밝아보였나 봅니다. 매일 만나는 학생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제 표정,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휴식 시간마다 좋은 시 한 편 읽고 들려주는 일, 결코 소소한 일이 아니지요. ‘우보천리(牛步千里) 동행만리(同行萬里)’라 하니 아주 먼 훗날 학생 한 사람이라도 ‘그때 그런 원장선생님이 있었지’라고말할지도 모를일.~~     


오늘은 박노해 시인의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읽으며, ‘집’의 한계를 조금 넓혀봅니다. ‘사람’이 되는 집, ‘이웃’이 되는 집, ‘세계’가 되는 집...  ‘내가 살고 싶은 집이 누구라도 늘 함께 살고 싶은 집’이 되길 소망하면서, 오늘의 시를 들려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날 만들어가시게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내가 살고 싶은 집 박노해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작은 흙마당이 있는 집     


감나무 한 그루 서 있고

작은 텃밭에는 푸성귀가 자라고

낮은 담장 아래서는 꽃들이 피어나고  

   

은은한 빛이 배이는 창호문가

순한 나뭇결이 만져지는 책상이 있고

낡고 편안한 의자가 있는 집  

   

문을 열고 나서면

낮은 어깨를 마주한 지붕들 사이로

구불구불 골목길이 나 있고

봉숭이 고추 깻잎 상추 수세미 나팔꽃 화분들이

촘촘히 놓인 돌계단 길이 있고  

   

흰 빨래 널린 공터 마당에

볼이 발그란 아이들이 뛰놀고

와상 한켠에선 할머니들이

풋콩을 까고 나물을 다듬고    

 

일 마치고 온 남녀들이 막걸리와 맥주잔을 권하는

그런 삽상한 인정과 알맞은 무관심이 있는 곳     


아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제발 헐리지 않고 높이 들어서지 않고

돈으로 팔리지도 않고 헤아려지지 않는

모두들 따사로운 가난이 있는 집

석양빛과 달빛조차 골구루 나눠 갖는

삶의 숨결이 무늬진 아주 작고 작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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