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봄날 아침편지105

2024.8.1 박태건 <8월>

by 박모니카

한시간 여, 어떻게 날이 밝아 오는지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혹여 비를 담은 구름이련가 싶을 만큼 무거운 구름 뭉치들이 한자리에 오래 머물렀는데, 천천히, 매우 천천히 구름을 밀어내고 푸른 창공을 보여주는 그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저 아름다운 자연의 빛을 어찌 말로 표현 할수 있을까. 아니 아니 시인이라면 얼마나 가슴 뭉클하게 이 광경을 표현할 것인가... 속으로 부러움이 이는군요. 어느새 태양은 다섯 손가락 다 펼치며 광활한 세상의 만물을 깨워버렸네요. 비몽사몽하는 저의 정신도 ‘확’ 깨워주니 감사할밖에요.


어제는 어린 후배님 두 분의 암 발병소식을 동시에 들었습니다. 저보다 어리니 아직은 오십대지요. 수업을 마치고 한 사람은 병문을 갔고, 또 한사람은 오늘 만납니다. 지금까지 제가 무병하게 살고 있으니, 또 가까운 사람들 역시 그러해서 암 같은 질병은 남의 일로만 여겼는데, 처음으로 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쉬어가라는 하느님의 축복이야.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 평생 노동으로 살아온 몸, 돈 걱정하지 말고 쉬어. 보약이 어떤 맛인지, 이번에 먹어보고. 걱정마소. 몸에 다가온 신호가 있었음에 감사하고, 쉬어가야 더 멀리 갈 수 있으니, 아마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살걸세. 이렇게 누워있으니, 애기같이 귀엽고만.” 하며 얼굴을 또닥거리니, 웃기지 말라고 배에 힘들어가면 아프다고 더 애기같이 굴었습니다.


밤새 두 후배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담느라, 잠을 설치기도 했네요. ‘내가 만일, 암 선고를 받는다면? 나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별칭인 하루살이의 일생을 되짚어 보기도 했지요. 지금 같으면 무변(無變)하게 말없이 살아갈 것 같은데,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으니, ‘만일 ~라면’이라는 가설에 저의 반응을 지금 알 수 없겠지요. 단지 희망하는 모습은 있지만요.^^


팔월의 첫날입니다. 목요일이니 어느새 주중이 끝나 버리는 느낌이네요. 제 학원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 쪽지와 시 한편 보내 드려야겠습니다. 매일이 첫날이지만 특별히 숫자 1의 새 기운을 믿고 새 마음으로 장전해 보시길, 저도 총알 한 방 넣어서 낯선 곳을 찾아다니려합니다. 몽땅연필 같은 여행시간 일지라도, 줄줄이 세워놓으면 여느 길고 긴 여행 못지않은 고유한 저만의 시간들. 먼훗날, 짧아진 연필심으로 제 삶의 평면에 굵은 선 하나 진하게 그을 수 있도록, 오늘도 잘 살아보겠습니다. 박태건 시인의 <8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8월 - 박태건

- 이 회색 도시에서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연꽃 항구가 있다는 것 -


초록빛 돛을 단 멋진 배들이

연꽃 항구에 닻을 내리오

뿌리에서 뿌리로 굵은 마디의 손을 잡고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건

오래된 예절

눈이 많이 내리는 항구와

갯메꽃 핀 해변을 걷는

아름다운 종아리의 처녀들


연꽃 항구에서는 먹구름이 몰려와도 두렵지 않소

비가 내리면 우아하게 왈츠도 출 수 있을 거요

(상대의 발을 밟기도 했던!)

물오리들은 수면 위로 물음표를 띄우고

푸른 무도회를 보러 올 거요


호기심이 있다는 것은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아직 어리다는 증거

미지의, 새로운 여행을 할 준비가 됐다는

의지의 표명


이 회색 도시에 연꽃 항구가 없다면

얼마나 서먹할 것이오

먼 나라로 소식을 나르는 우편선을 보며

연꽃의 분주함을 보는

노인들은 아직 남은

8월의 저녁을 헤아릴 것이오

8.1 여름날1.jpg 대야의 푸른 들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봄날 아침편지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