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2020.6.1

by 박모니카

황석영 작가의 신간 ‘철도원 삼대’출간발표회(6월2일)가 있을 예정이다.

작가 황석영의 ‘장길산’을 대학 때 읽고 난 후 작가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1970년대 민중운동의 전사로서 조선 후기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그린 역사소설 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생각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함께 대학시절 뜨거운 지성을 간직하려했던 기억도 생각난다.

2주전, 출판사 창비에서 사전서평단을 선정한다고 했다. 바로 황석영 작가‘철도원삼대’. 제목만 보아도 작가의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사전 평가단으로는 처음 참여하는 거라 책의 분량도, 구성도 몰랐다. 도착한 책은 목차도 없고, 등록일도 없고... 아! 이렇게 생겼구나!


‘철도원 삼대’는 원고지 2천장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평가를 위한 책은 200여 페이지의 단본으로 출간예정도서의 일부를 담은 거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작가는 1989년 북한 방문 이후 평양서 만난 노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설을 착상했다고 보도된 자료를 보았다.

구상에서 집필까지 30년의 세월을 품고, 철도원 삼대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제목에서 보듯이 철도원으로 생을 이어온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한국에 철도가 들어왔을 때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사회 속에 한국 노동의 100년의 역사도 들어있다.

2015년 현대의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 후손의 싸움을 소설의 첫 장면에 도입 시켜서 식민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노동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진오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 처음에는 난간을 잡고 시도해보았지만,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쭈그리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려면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했다.”(P.5)


고공 농성현장을 뉴스로만 접했던 나는 첫 문장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남편은 이 한 문장으로 바로 노동, 노동자, 노동자의 슬픔을 쉬운 얘기로 말해주었다. 또한 지역에서 있었던 농성과 지금은 지인이 된 대상자를 사례로 들어주면서 나의 관심을 촉구했다.

작가는 고공농성현장을 매우 실감나게 표현했는데, 이는 408일 동안 굴뚝농성을 벌였던 차광호 금속노조 전 지회장한테서 조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소설은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는 해고 노동자, 이십오년 동안 공장 노동자로 일해온 이진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다니던 공장이 폐쇄되고 다른 회사에 팔리면서 해고자가 된 이진오는 노조대표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결국 함께 해고된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공농성을 선택하여 이 상황을 풀려고 한다.


혼자만의 고독한 고공농성의 장은 현실을 벗어나서 결국 자유로운 경계를 넘어선 다른 시간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영등포에 살던 어린 시절, 똥통을 통과해야만 볼 수 있었던 공짜 영화에 얽힌 추억속 친구 ‘깍새’와 이진오가 태어난 샛말 집을 불러 일으킨다.

또 더 멀리 철도공작창 기술자였던 증조할아버지 이백만과 할머니 주안댁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이야기는 철도원 삼대의 근원을 찾아가게 했다.


‘여기서 시간은 길게 늘리거나 놓아버리면 반동 때문에 일시에 줄어드는 고무줄처럼 종잡을 수 없게 흘러간다.’ (P.8)

증조부이백만은 철도국 고원(직원)이 되어 영등포공작창에 자리를 잡았다. 한강철교를 지나는 기차를 목격한 후 아들을 낳자 기차를 생각하고 이름을 지었다.

두 아들 중 큰 아들은 한쇠(일철), 둘째 아들은 두쇠(이철)로 짓는다. 일철은 철도종사원양성소를 거쳐 조선인 기관수가 되었고 이철은 아버지, 이백만을 따라 철도공작창에 다니다가 파업을 주도하고 해고된 뒤 노동운동에 매진한다.


이진오에게 이런 추억을 고스란히 전해준 인물이 있었는데, 일철의 아내인 신금이이다.

시간여행을 할 때, “허기졌지? 어서 시언허게 물 말아서 먹어라.”라며 허상의 회고통 속에 밥을 채워준 할머니였다. 당시로는 드물게 소학교를 나와 방직공장에서 중학 강의도 받은 신금이 할머니는 동네에서는 야학선생님 같다고, 신통력과 예지력을 가진 신여성으로 불리었다.


이 신금이로부터 소설 속 주요 여인들이 등장한다. 이백만의 아내 주안댁, 여동생 막음이다.

홍수가 진 영등포 일대에서 초인적 힘과 지혜로 사람과 물건을 구한 주안댁의 전설 같은 활약과 막음의 출중한 입담은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 주안댁이 언덕 가녁에서 살피다가 서슴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자 밧줄이 풀려나갔다. 그녀는 참외며 오이 등 속을 그러모아 나왔고, 어느새 물질에 이골이 나서 닥치는 대로 걷어드렸다. 그때에 돼지 두 마리다 사지를 버둥거리며 떠내려왔다. 하나는 거의 주안댁만이나 하고 다른 한 마리는 그것의 절반 정도 크기였다. 주안댁은 헤엄쳐 다가가서 튼 놈의 머리에 올가미를 씌우고 한 마리는 목을 그러안고 외쳤다.-(P.118)


일철이 동생, 이철이는 노동운동 중 체포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숨지고 일철은 월북을 선한다. 그의 아들 지산 역시 아버지처럼 철도 기관사가 되어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다.

그러나 부상을 입은 채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어 영등포 집으로 돌아온다.


대한민국의 철도의 역사는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 9월 18일에 개통된 경인선으로 시작되었다. 주요 간선 노선은 이후에 일본을 중심으로 한 열강의 침탈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 일본에 점령당하며 군사·정치적 목적에 의해 생겨났다.


소설에서도 경인선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백만이가 민십장에게서 듣는 내용이다.

-나야 원래 조선 사람 태반이 그러하듯 농사꾼이었네. 아부지는 양민이었으나 삼대독자로 일찍 부모를 잃어 타관에서 떠들어와 소작을 부치고 살아갔다지. 내가 나이 들어 좀 살만해지니까 철도가 들어온다구 그래. 인천서 노량진 내왕하는 기차를 보러 수십리 길을 걸어 영등포역에 가보았다네. 김을 잔뜩 내뿜으멘서 칙칙폭폭 우루루르 하면서 시커먼 쇳덩어리가 벼락치듯이 달려드는데 그런 괴물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P.67)


- 경부철도주식회사의 기사들과 그 아래 청부를 준 일본의 토건회사들과 철도 노동자가 일본군을 앞세우고 공사에 필요한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경의선 구역에서 더욱 심각하여 철로가 지나는 곳마다 땅을 빼앗긴 백성이 수만명에 이르렀다. 철도부지의 수용은 거의 무상몰수나 마찬가지였다.-(P.68)


이진오의 고공 농성현장으로 다시 돌아오면, 100년이 넘는 세월의 흐름에도 여전히 노동자의 울음은 변함없이 들려온다. 택시 기사가 크레인에 올라가서 일년 가까이 농성 중이었던 때도 있었고 기차의 여성 승무원들은 십 여년 넘게 복직투쟁을 계속했다. 또 교사들은 법외 노조를 제도권 안으로 회복시켜 달라고 몇 년째 거리에 나와 있다.

임시직, 계약직 이라는 용어는 이젠 일반화를 넘어 그것에 물음을 달면 ‘배가 불러서’라는 비아냥을 감내해야만 하는 사회의 그늘 속에 내 이웃들이 있다.


이철의 물음이 떠오른다. “독립운동과 계급운동은 다른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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