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이에 가을이 왔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김춘수시인이 노래했는데, 저도 이 새벽에 ‘입추로구나’라고 불러주니, 정말 가을이 온 듯합니다. 올여름도 에어콘 없이 살아보자, 이깟 더위 길어봤자 2-3주. 오고가는 일상 루틴 속에 다 에어콘 천지, 우리라도 아껴보자... 라고 말했던 제 의견에 동의해준 덩치 큰 아들. 살짝 보니 어느새 가벼운 홑이불 하나를 걸치고 자고 있군요.
오늘은 제주도로 볼일이 있어 다녀온다길래, 여름을 잘 참아주고 있는 성품이 고마워서, 옷이라도 하나 사라고 했더니, 세일한다는 반 바지 두 개(2만원도 안되네요)만 집어들더군요. 요즘 밥 한끼에 1만원이 넘는 시대, 때론 ‘돈이 돈이 아니구나. 헛돈이야’하며 신음할 때도 많은데, 최소 1년이상 입어도 상처나지 않을 옷을 보면서, 또 이런 옷을 만든 제3세계 어린 손들이 생각나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네요.^^
말씀드린대로 오늘은 ‘입추(立秋)’ 가을이 시작되는 절기입니다. 보통 이때는 논의 곡식이 여무는 시기이니, 옛 사람들은 입추에 하늘이 맑으면 풍년을 기대했다지요. 농부들이 벼를 들여다보며 김 매기(논밭의 잡초나 풀 등을 제거하는 일)도 시나브로 끝나는 때라, ‘어정거리며 7월 건들거리며 8월’이라는 말이 웃음짓게 합니다. 오늘도 최고치의 폭염수치가 예보되어 있지만, 어느새 얼굴에 스치는 바람 한 점에도 쌀쌀한 정(情) 한 톨 남겨질 것입니다. 어제도 시내를 오며 가며 보이는 초록 들판에, 어수선한 마음 조각들을 던져버렸더니, 학생을 만나는 오후가 가벼워졌었지요.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을 때, 달력에 써있는 절기(節氣) 이름이라도 한번 읽어보면 이내 마음에 다른 불이 켜집니다. 내 안의 나에게, 내 밖의 사람들에게 훨씬 더 너그러워집니다. 이제 여름더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입추’가 문을 두드렸으니, 서서히 우리도 가을맞이 하시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