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9 손택수<외할머니의 숟가락>
하얀 연기를 뿜어대던 소독차량 뒤를 따라다니던 어린시절이 있었는데요. 제 몸의 세균을 막아준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방금도 창문 너머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용달차 뒤꼬리에서 나오는 소독입자들의 난무를 바라보며 ‘지금이라도 나가서 따라가볼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흔들어 나옵니다. 제 몸 대신 주차된 제 차라도 소독세례를 잘 받았으니 이만 됐다 싶네요.^^
자꾸 지난 날이 생각나는 건 좋은 일 일까요, 아님 그 반대일까요. 아니, 가까이 있는 생각을 놔두고, 왜 멀리까지 가서 잡아올까요. 나이들수록 복잡하게 얽힌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라는 뜻인지, 어린시절 추억으로 정화수 한잔 마셔보라는 뜻인지,,, 순간순간 옛날일들이 떠올라요. 이러다가 중요한 어떤 일은 잊어버리고, 또 잊어도 될 어떤 일은 몸이 기억하는, 소위 ‘치매’라는 과정을 겪을까 걱정되기도 한답니다.
요양보호사 과정을 공부할 때 들으니, 치매의 명약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책읽고 글쓰는 일, 또 하나는 좋은 사람과 자주 만나 얘기하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지금까지는 찾아오는 타인 누군가의 말동무가 되는 경우의 수가 많았다면, 앞으로는 제가 먼저 찾아가서 ‘저의 말동무가 되어주세요’라고 청할 수 있는 귀인을 찾아볼까봐요. 남녀노소 무관하게요~~
어제도 귀인 한 분께서 챙겨주신 누룽지 삼계탕을 가지고 와서 남편에게 보양을 시켰답니다. ‘맛있지? 엄청 고소하지?’ 라는 말에 ‘맛있네. 진짜 고소하네’ 라며 후루룩 먹다가 옆에서 침 흘리는 복실이에게도 한 점 나누는 남편. 절반을 남겼다가, 저녁 수업하던 저를 또 챙기니, 일거삼득(一擧三得)이 되었답니다. 사실 지난 며칠간 그분이 아프셔서 점심 한끼 대접해야겠다 싶어서 나갔는데, 오히려 큰 덕을 본 셈입니다. 덕을 보았으니, 오늘은 다른 분께 덕 나눔을!
한주가 지나가네요. 요즘 딸이 잘 돌아오도록 매일 기도를 하는데요. 하도 세계정세가 불안해서 집콕하다가 오라고 했다가도, 이 젊은 날이 아니면 언제 또 여행하리 싶어서 희망하는 곳을 돌아다니도록 허락하기도 합니다. 매일 영상 톡을 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어서 빨리 보고 싶네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무조건 만나고, 무조건 톡이라도 눌러보세요. 어디에서 언제 그분께서 주시는 행운이 당신 품에 떨어질지 모르니까요. 손책수시인의 <외할머니의 숟가락>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외할머니의 숟가락 – 손택수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
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
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
먼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
마실 간 주인 대신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사진제공,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