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1 정군수 <석정의 바다>
‘빼기의 어려움’ 그 대상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니,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일단 몸무게 빼기부터, 냉장고 음식물 빼기, 안입고 안쓰는 물건 빼기, 등. 딸이 내일 출발해서 온다는데, 일년동안 살았던 짐을 들고 올텐데, 집이 하도 작아서 정리를 해야 딸이 며칠동안이라도 편히 쉬다가 갈 공간이 생길텐데, 내 몸만 서늘하지 젊은 청춘들은 아직도 더운데, 빈 공간이 많아야 시원할덴데 하며 맘으로만 열심히 일했던가 봅니다. 아고, 이놈의 게으름이라니~~
어제도 더위의 기세는 맹렬했지요. 책방에서 바라보는 바깥모습은 가을 냄새가 슬슬 풍기는가 싶어서 기웃기웃했는데, 토요일인데도 책방까지 얼굴 내미는 사람들의 수는 대여섯 명. 그런데 그 중, 40대의 여성과 초등학생이 문을 노크했어요. 마침 부안출생 신석정 시인의 시를 낭송하는 낭송가들의 영상을 보고 있었거든요.
학생의 얼굴이 발갛게 익어서 ‘어서 들어오세요’라는 인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엄마의 지적 모습을 그대로 닯은 학생. 그녀가 읽을 책을 찾아보라는 엄마의 말에 동시집 한 권을 선물로 주었어요. 지역문인이 쓴 동시집이라 지역과 알리고 그 문인도 알리는 마음에서요. 엄마는 말랭이마을에 대해 물어보시더니, 이내 제가 쓴 말랭이마을 어머님들 인터뷰 책을 고르시더군요. 이 책은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거 아니냐고 하시면서요... 내심 씨잇 웃었답니다.^^
손님을 보내고 글쓰기 영상을 보는데, 소주제 중의 하나가 ‘글쓰기에서 빼기의 어려움’이라고 써 있더군요. 며칠째 머릿속에서 맴돌던 제 생각과 일치해서 더 쏙쏙 들어왔습니다. 글도 마찬가지, 빼내어야 작가의 본뜻이 들어차는 법. 자신도 모르게 쓸데없이 채워지는 습관성 말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으면 분명 좋은 글이 아니지요. 문제는 그 기준점을 모른다는 점, 그래서 또 제 3자의 관점 또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겠지요. 이 짧은 편지라도 ‘불필요한 수다네’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를 위해 조언해주시길 바래봅니다. 갑자기 제 글에 대한 의구심과 반성하는 마음이 불쑥 들어오는군요....
시낭송하는 지인이 며칠 전 신석정 시인관련 낭송대회에서 시를 낭송하여 큰 상을 받았는데요, 영상속 그녀를 보며 ‘참 목소리도 좋고 잘도 하시네’ 박수를 보냈습니다. 오늘의 시는 정군수 시인의 <석정의 바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석정의 바다 – 정군수
노을이 없어도 바다는 슬퍼하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짓누르고
하늘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바다는 절망하지 않았다
서해가 닻을 내리고 어둠이 몰려올 때도
수평선 너머에서는
새벽을 끌고 오는 바다가 있었다
석정의 바다 그 너그러운 몸짓
손가락 하나라도 어둠에 적시지 않은
절대 자유를 향한 넉넉한 그리움
밤 깊을수록 침묵하는 군상들을 흔들며
해원에서 용솟음치는 소리를 모아
어둠을 뚫고 일어서는 해일을 불렀다
이념을 뛰어넘어 세상을 깨우는 해일
날개 부러진 바닷새의 깃털 하나도
당신의 바다는 팔 벌려 껴안았다
생명을 포효하는 이빨 하나로도
비굴을 거스르며 우리의 곁으로 오는 바다
더디게 더디게 강철 같은 어둠을 가르고
당신의 바다에서 세상은 눈을 뜬다
출렁이며 다가오는 석정의 바다
지금도 부안에 가면
어둠을 거부하는 석정의 바다가
일체의 거짓을 말살하고 우리 곁으로 온다.
<아래 석양사진은 문우 박지현님께서 보내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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