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2 이윤학 <여름밤이여, 옥상을 봐라>
<낯선 곳으로 떠나라> 고은의 시를 듣고 남편의 ‘라오스 한달살기’를 허락해 준 아내. 그녀의 응원에 힘입어 중년에 홀로여행을 다녀온 후배님. 어제는 그의 여행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나라에서만 한달 있을 계획으로 떠났던 그는 근처의 몇 나라를 여행했는데요, 특히 20대부터 70대까지의 사람들을 만나며 벌어졌던 여행기를 얘기하느라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자세하게 여행얘기를 다 하진 못했을지라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설렘으로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지를 충분히 알수 있어서, ‘정말 잘했어요.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다음 여행을 잡아봐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여행일입니다. 오랜만에 글도 두 편이나 쓰면서 하루종일 엉덩이 붙이고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로, 책방지기 했는데요. 날이 어찌나 더운지 오고가는 사람이 없다가 아들딸 초등 자녀와 여행하는 한 엄마가, 자녀에게 시와 그림 그리는 체험을 하게 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책을 사가는 것 만큼 그림 한 점 그리는 것도 중요하여, 더운 찜질방 같은 공간을 식혀드리느라고 제가 땀 꽤나 흘렸답니다. 학생은 말랭이 양조장풍경을 그렸더군요.
책방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풍경으로 호사를 누리다가, 안온작가의 <일인칭 가난>을 다시 집어서 읽었습니다. 이제 갓 26살 청년이 전해주는 ‘가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첫 페이지부터 그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게, 가슴을 먹먹하게 해서 왜 방송에서 언급했는지 알았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고 있음을 너무도 빠른 나이에 알아버린 그녀는 제 주변에도 능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무려 20년간이나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았다고 책을 통해 고백하는데요. 글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담백 솔직하게 잘 썼습니다. 제가 어제 쓴 글 중 한편이 어느 청년에게 힘을 주는 글이어서, 같은 맥락으로 안온작가의 책을 읽었지요. 기회가 된다면 그 젊은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듣는 북토크도 해보길 기대하면서요. 그녀의 말 ‘불온한 나날이 모여 안온한 한 해가 됩니다’라는 글이 인상적인데요, 혹여라도 오늘 하루 불온하다면 ‘한번의 날개 짓이구나‘라고 큰 한숨 한번 지어 볼까요...^^ 이윤학시인의 <여름밤이여, 옥상을 봐라>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여름밤이여, 옥상을 봐라 - 이윤학
양옥 옥상에 다리 포개고 앉은 어머니
아래사랑채 지붕 위로 오른
측백나무 벼슬을 바라보신다.
때 낀 손톱으로 옥수수 알을 떼어내
입안에 털어 넣는 어머니의 눈시울
붉은 페인트칠 달빛이 들어앉는다.
새벽에 일어나 돌아다니다 보면
아침 먹을 때가 되고
들일 나갔다 들어와 점심 챙겨 먹고
낮잠 한숨 자고
담뱃잎 따다 엮어 하우스에 널면
금방 저녁 먹을 때가 되지.
마루에 전깃불 밝히면
언제 들어왔는지
제비 한 쌍이 똥 받침대 대못에 앉아
저녁 먹는 걸 구경하지 뭐냐.
저 낭구*들은 다 지켜봤을 겨.
별것 있남. 금방 지나가는 겨.
저녁 먹으면 텔레비 틀어놓고
다리 뻗고 잠들어야 하는 겨.
어제가 모 두 전생 같은 것이여.
* 나무의 충청남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