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봄날 아침편지117

2024.8.13 정호승 <여행>

by 박모니카

병상에 누운 구순(九旬)의 어머니가 칠순의 아들을 보며, 걱정의 눈길을 보내며, ’내가 죽으면 네가 어찌 살꼬‘라고 하셨다는 어느 시인의 말. 사랑의 본질은 어머니의 희생 속에 들어있고, 사람이 본디 ’사랑‘이었으니, 이 둘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다고 하더군요. 동시에 톡 문자에 어느 어르신의 별세소식이 있어서 읽다가, 제가 10여년 이상 차량봉사를 했던 할머니 한 분이 생각나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분의 연세는 95살. 오랫동안 발신음이 흐른 뒤 바로 들려오는 목소리, ’아고 모니카고만. 잘 내시는가. 어머니랑 남편이랑 애들도 다 잘 있고.‘ 이런 저런 안부를 주고받으며, 칠십이 넘은 자녀분들이 매일 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 정말 유복한 가정이어서 저도 맘이 편해졌습니다. 이분과 나 사이에도 바람이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풍경 하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딸은 이 시간 두바이에 도착했네요. 저녁이면 딸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겠습니다. 열차파업도 많고, 워낙 뒤숭숭한 유럽정세라 비행기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맘이 놓이지 않았답니다. 소위 ’일년 살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짐들이라 챙길 것도 많겠지만, 수화물 초과로 가방 하나와 여러 물건을 놓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하길래, 속으로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었지요. 몸과 정신 하나만 건강하게 돌아오면 그만이니까요.


딸을 핑계로 촌 아줌마 상경하며 다른 풍경 즐길 생각을 하니, 새벽부터 맘이 설레네요. 저 혼자가면 인천의 이곳저곳도 들려보고 싶은데, 운전하는 아들 눈치 보느라, 얌전히 따라 다녀야겠지요.^^. 친척 한 분이 미국인이셔서, 처음 공항에 갔던 어린 시절이 기억나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공항을 보면 낯선 곳으로의 여행길로 떠나고 돌아오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언어를 한곳에 모아두는 신비한 장소. 공항 내 풍경만 바라보고 있어도 이내 마음은 전 세계 어딘가로 떠나고 있으니, 꿩 대신 닭이라도 먹는 셈이지요.~~

이제 매미의 울음소리도 덜 들리지요? 대신 여치소리들이 맑은 구슬 구르듯, 폭염의 땀방울을 또르르 굴려줍니다. 좋은 소리로 귀가 맑아지면 그만큼 더위도 덜 느끼는가 봅니다. 어느새 아들 입에서 ’벌써 여름이 가네. 아침 저녁 서늘해지고‘라는 말을 들으면서 에어콘 없이 또 한 여름 잘 보낸다 라고 생각했답니다. 의식이 강한 엄마 덕분에 매일 자동사우나탕에 들어갔던 아들. 이렇게 세월은 가고, 여름도 가고, 또 선선한 가을도 오니, 자연의 순리따라 살면 최고인 것을~~ 이라고 말해줍니다.

정호승시인의 <여행>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여행 – 정호승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말랭이카페 시그니쳐, 판단누룽지라떼 라네요... 깨알 홍보차^^

<잠자리사진, 안준철시인 작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봄날 아침편지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