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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 아침편지118

2024.8.14 조정일<복날>

by 박모니카

서해바다의 일몰이 감싸 안은 인천 앞바다는 참으로 평온했습니다. 딸의 귀국까지 맘 졸였던 저를 위로하는 선물 같았어요. 저를 아는 많은 지인들의 염려와 사랑 덕분에 귀한 딸은 건강하게 돌아왔구요. 이제 좁고 더운 집에서(?) 8월을 나고 또 떠나겠지요... 그래도 다시 만난 지금의 기쁘고 설레는 마음만 있다면 ’그깟 더위쯤이야, 그깟 좁은 공간쯤이야’ 웃으며 반길 아이의 품이라서 제 맘이 놓입니다.

오늘이 말복이라고 써있네요. 제 친정엄마와 제 딸의 돈독한 관계에 보양식 한 그릇 더 차려놓고 삼대에 걸친 여자 셋이서 정담을 나눌까 하지요. 너무 이성적인 저와 달리 어른의 분위기를 잘 맞추는 딸이 왔으니, 당분간 친정엄마의 속내는 손주 딸이 다 들어줄 것입니다.


저를 보자마자, 살이 빠졌다느니, 더 예뻐졌다느니, 하는 말솜씨로 너스레를 떨더니, 차 안에 놓여있는 지인의 원고지를 보면서 또 저를 칭찬했지요. ‘울엄마는 못하는 게 없어. 제 3의 직업은 울 엄마에게 딱 맞아. 책방과 출판사하길 정말 잘했어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교정하는 과정에서 엄마의 글도 발전하는 모습이 정말 좋아.’ 등... 칭찬뿜는 고래 한마리가 돌아온줄 알았답니다. 그러니 왕복 여행에 피곤이 싹 달아났지요. 뒷자리에 앉아, 제 오빠와의 소곤거리는 대화, 제 아빠와의 통화를 들으면서, '이제 정말 다 컷구나'하는 생각.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대견하고 뿌듯했네요. ^^


공항에 가기전 딸의 환영문구 한 장을 준비했었습니다. 단연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첫 구절이 생각나더군요. 광고하는 후배에게 톡을 넣어 문구를 주었더니 잘 만들어 놓았어요. 사실 처음엔 뭐 이런 것을?? 하는 맘이 있었지만, 이것 역시도 '두 번 할 수 없을지도 몰라' 하는 맘이 스쳐가길래, 맘을 바꿔 만들어봤지요. 제 딸이 언제든지 저를 생각할때 ‘특별한 엄마였어’라는 추억을 갖도록,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했답니다. 참 잘 한 것 같아요.


시를 매일 만나니, 다른 건 몰라도, 좋은 시를 구별하는 능력, 좋은 시를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아마도 편지를 받아주시는 당신께서도 그럴거라 믿지요. 오늘도 좋은 시 한수 보내드리니, 아침 출근길, 산책길에 소리내어 읽어보세요. 조정일시인의 <복날>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복날 – 조정일


시원한 그늘 땅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만 있어도 원이 없것다

땡볕에 참외 바구니 이고 수십 리 걸어 동네 어귀에 들어선다

범벅된 땀 속으로 주르르 딸린 새끼들이 뒤엉켜 붙는다

참외와 바꾼 보리는 목을 짓눌러 자라목 지나 안 보일 지경

어스름 무렵 숨비 소리 도착하면 누런 얼굴들이 긴 목 내밀고 허벌난 웃음으로 달겨든다


'무얼 먹어야 할까'

'산골짜기에 솥단지 걸고 늘어지게 먹을까'

'식당에서 에어컨 켜고 사 먹을까'

머릿속에는 갖은 기름진 것들이 처자식의 의견을 물을 때쯤 벨이 울린다

전화통에 끊길 듯한 목소리에 쉰내가 난다

"잘 있냐, 너들 줄라고 밭에 갔다왔다"

"더운데 뭣 하러 밭에 가요, 그냥 쉬시지"

바싹 타는 더위가 구름 밀어내고 하늘 중턱에 걸터앉으면

찡그리는 얼굴의 굵은 골 사이로 혼탁한 냇물이 흘러내린다

"괜찮다. 난 썽썽하니깐 걱정 마라"

울 엄니는 고기를 먹을 줄 모른다

내가 커 가면서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이장이 백숙을 먹으러 오라고 방송한다

'중복이라고 누가 닭죽 해 왔나'

손수레에 의지하여 마을 회관으로 가는 내내

엄니의 미소가 가득하다

'자식들 안부가 보양식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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