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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 아침편지120

2024.8.16 독운 <팔월의 기도>

by 박모니카

숲속에 내리는 빗소리 덕분에 편안하게 잠을 잤네요. 모처럼 책방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마음으로요. 오늘부터 3일간 군산시 행사 ‘2024 군산 문화유산 야행’이 시작되는데요, 말랭이마을도 그 코스에 포함되어 도로 일부가 통제됩니다. 야행이라 함은 말 그대로 ‘밤의 여행(8.16-8.17, 저녁 6시-10시)’, 군산의 여름밤 군산 문화유산을 다양한 방법으로 체험하며 배우는 시간입니다. 포스터를 보니, ‘야행 느껴보기, 야행 즐겨보기, 야행 걸어보기’라는 소 제목으로 여러 행사들의 이름이 있네요. 작년에는 말랭이 마을의 전시관과, 작가들의 일부 작업장도 개방하여 행사의 주체자 느낌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올해는 또 바뀐 시 담당자 덕분에(?) 저의 몸은 편하게 되었습니다. ^^


마을 바로 아래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 있는데, 평소에는 내부를 볼 수 없었어요. 행사기간내에 개방한다하니, 일본 가옥의 내부가 궁금한 분은 가보셔도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군산근대역사거리라고 해 놓고, 이 가옥을 건축사학적으로 보존, 홍보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이해되나, 집 테두리만 둘러보고 발길을 옮기게 하는 관광객들 동선을 보면, 그리고 이 가옥에서 진정 우리가 일제 강점기 역사의 한 점이라도 느낄 수 있나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행정서류 한 장 넘어가는 소리보다 못할 때가 많아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같이 체험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비록 관광장소가 평범하다 할지라도, 시민으로서 할수 있는 일이 무진장 많아 보이는데,,, 사람의 생각이 어찌 생각이 다 같을 수 없으니 그런갑다 하고 지나가네요. ~~


야행과 무관하게 제가 진행하는 책방 소식하나 전합니다. 군산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예산을 받아, 책방들이 각자의 색깔로서 행사들을 기획했는데요, 저는 인문철학강연을 준비했습니다. 강사의 경력 타이틀 중 ‘철학교사’라는 말이 흥미로와요. 우리나라 중고등 학교에서 아주 소수의 철학교사가 있다고 하네요.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그의 철학강의가 매우 좋다고 해서 모십니다. 책을 읽어보니, 철학이라는 말의 무게를 매우 가볍게 느끼도록 우리 일상의 예를 빌어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 눈에 띕니다. 그의 이름은 안광복 작가님. 어제 광복절과 인연이 있는 강사가 아닌가 혼자 생각했어요,~~ 강연 참가자 선물로 작가님의 책도 많이 준비했으니, 야행구경 전에 마을로 오셔서 좋은 강연 함께 들으시게요. 시간은 8.17(토) 오후 3시입니다.

오늘은 독운 시인의 <팔월의 기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팔월의 기도 - 독운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울움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가슴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나라는 그 무슨 뿔 있어

겸허히 고개 숙이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과 부대끼며

헛되이 세월 강물에 떠밀려가는데

어느덧 한낮의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계단 어귀엔

종일 사랑 찾아 울던 매미의 시간은 멈추고

배를 드러내고 미동도 없이 생의 굴레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무서리가 날 선 낮을 휘두르기 전에

허황한 뒤안길

뜯기고 바란 벌레 먹은 입 마저 부끄럼 없이 한들거리며

나만의 갈무리를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습니다

단 하나의 알곡이라도 알토랐게 영글면

기꺼이 내 설운 눈물 모아

감사의 찬미의 재단을 쌓겠습니다


빛 바랜 나뭇잎들은

가녀린 생명들에게 제 살을 뜯기면서도

하늘바라기 유쾌한 몸짓으로 한들거립니다

팔월은 사정없이 비틀거리는 속을 휘저어

잊힌 소명을 일깨웁니다


한 길로

좁은 길로

뚜벅뚜벅 가라

멈추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곁눈질하지 말고

귀뚜라미 울음이

더욱 또렷이 들립니다


가을은 도둑 같이 올 것이고

나 역시 짙은 가을 색으로 변하겠지요


내 사모하는 님이시여

그날에 내 이름 쩌렁쩌렁 두 귀에 들리게

부디 이 손 꼭 잡고 가옵소서

8.16 야행1.jpg
8.16 야행강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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