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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 아침편지130

2024.8.26 이정록 <이름을 불러줄때 까지>

by 박모니카

태국과의 시차 2시간을 반납하고 돌아오려니, 왠지 서운하고, 중요한 제 물건을 놓고 오는 양,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하루를 살았어도 그 나라에 빚을 지고 왔으니, 언젠가 다른 인연으로 맺어진다면 꼭 보답해줘야지 하며 제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날씨만 따뜻한 게 아니라, 제가 만난 사람들 모두가 참 따뜻하고 미소가 가득했던 나라, 태국! 불교의 나라답게, 가는 곳마다 사원과 신자들의 모습이 많았구요, 그래서인지, 관광지라고 해도 시끄럽지 않고, 예를 갖추며 절을 하고, 덩달아 관광객들의 말소리도 온화하게 스며들었습니다.


태국의 대표적 건물특징을 보니, 크게 왕 중심의 왕궁과, 불교중심의 사원이더군요. 첫날, 금빛으로 도배된 왕궁의 화려함에 잠시 눈이 번쩍였지만 이내 고풍스런 향과 멋을 간직한 오래된 절의 건축물과 나무들을 보면서 눈의 피로도는 사라졌지요. 인간이 빚은 건축물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동반되어 있는데요, 유럽의 대성당들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 등을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 절은 참으로 겸손하고 인간중심의 건축물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많아도 하늘아래 한 점 일진대, 하늘 높이 치솟는 탑, 지평선 멀리 뻗치는 담장들을 보면 감탄과 동시에 인간의 슬픔과 아픔도 생각납니다. 누구를 위한 건축물이던가 하고요. 그래서 여행지에 가면 유명한 명소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지 않고, 그 속에 들어있는 누군가의 피와 땀, 그리고 눈과 손을 유심히 봅니다. 세계의 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현재 태국의 관광상품들 속에도 수 천년 동안 말하고 싶었던 그들 목소리가 들어있을 테니까요. 당당하고 멋진 조카의 저녁만찬을 대접 받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오늘부터는 8월의 마지막 주간으로 큰 행사(Book Fair)들이 있네요. 책방주인으로 참여하는 책 박람회를 열심히 홍보하고 저의 ‘봄날의 산책’을 찾는 분들에게는 선물준비도 하고요, 할 일이 많아서 왠지 신나는 출발입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충분히 휴식했으니, 이제 본업으로 돌아와 학생들도 가르치고, 책방도 열고, 글쓰기 문도 시원스레 열어야겠습니다. 저의 귀국??을 축하한다고 마중 나온 아들 차를 타고 신나게 군산으로 Going 하겠지요, 복실이도 보고 싶고요, 더 맛난 우리나라 밥을 남편이랑 먹어야겠어요. 이정록시인의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이름을 불러줄때까지 – 이정록


이름 명(名)이라는 한자는

저녁 밑에 입이 있다

해가 지고 깜깜해지면

손짓할 수 없기에 이름을 부른다

어서 가서 저녁밥 먹자고

밥상머리로 데려간다

작은 불빛을 가운데에 두고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이름 명 자를 보고 있으면

그 글자가 만들어진 먼 옛날 밤이

두런두런, 우렁우렁, 까르르 밀려온다

어서 들어와 저녁 먹으란 말이 좋다

어둠 속을 헤쳐 와서 어깨동무하는 목소리,

오늘은 저녁 식판을 들고 속으로 말한다

엄마도 그만 돌아오셔서 저녁 드세요

아버지도 엄마랑 밥 좀 같이 드세요

야간 자습 끝나려면 두 시간 남았는데

야식 배달시켜 놓으라고 전화한다

나는 아파트 입구 놀이터에서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수다를 떤다

누군가 나를 마중 나올 때까지

이밤에도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어둠 속을 서성거릴 거다

나도 가로등 쪽으로 목을 내밀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거다

방콕 어썸션성당 일요미사참석
왓아론사원, 동양의 에펠탑이라는 별칭
짜오프라야 강물에 앉은 석양을 보며 감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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