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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 아침편지134

20242.8.30 한용운 <여름밤이 길어요>

by 박모니카

쏟아지는 한낮의 햇빛받이, 제 등이 갑자기 들판의 벼 이삭줄기 같이 느껴져서 딸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벼 이삭 같아. 고개가 자꾸 떨궈지네.‘ 이에 ’ 아니, 엄마의 말이 어쩜 그렇게 문학적이야?‘ 라고 응답하더군요. 사실 이 말은 전날 파이를 만들어오신 한 문우님께서 당신의 언어표현이 이랬노라고 하며 들려준 말을 딸이 그대로 흉내 낸 것입니다.


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 흔한 빈부의 차이를 가려주고, 소위 학교 가방끈 길이의 차이도 덮어주고, 글 하나로 세상 미운 것들이 다 사라지는 마법지팡이 같은 효과를 보여주니까요. 그러니, 문학만 공부할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란 공부를 접해봐야 세상 살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답니다.


전북지역의 대표적인 문학인 하면,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와 석정 신석정 시인, 미당 서정주 시인 등이 있는데요, 이분들의 스승인 석전 박한영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와 인문정신을 들려준 강의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강연하신 교수님의 시원한 입담도 좋았지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배움의 과정과, 그 길에 함께 나선 지역 선배님들의 인정(人情)속에서 오고가는 드라이브가 한껏 더 즐거웠지요. 멀리 있는 성인이나 고전의 글자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지혜가 더 가치롭고 배울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4번 더 있을 강의시간과 전주행 드라이브가 기다려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옆 나라 일본에게 다가온 태풍이 걱정보다는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현 시국. 알아서 사라져 갈 8월의 땡볕처럼,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여러 사태들이 사라지고 하루빨리 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데요. 어제 강연에서 들었던 만해 한용운을 비롯한 여러 근대 문인들과 불교 선승들의 바른 정신을 떠올려보는 아침입니다. 가벼운 글 하나를 쓰더라도 민족 고유의 정체성과 자의식, 그리고 덕성이 담긴 글을 썼던 옛 문인들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옛사람은 가버리고 없으니, 현세대에 사는 우리가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글공부 해야지요. 내일부터 2일간 있을 군산 북박람회 준비차 오늘은 쬐끔 동분서주 하겠습니다. 저는 지인들께, 책 구매시 반 강매를 적용해서 무조건 행사장으로 출동해 주십사 홍보중입니다. 8월의 마지막 붙타는 금요일, 열심히 땀나게 달려보시면서, 그 열정 박람회까지 이어주세요.!! 한용운 시인의 <여름밤이 길어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여름밤이 길어요 - 한용운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에는 여름밤이 길어요.

책력의 내용이 그릇되었나 하였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벌레가 웁니다.

긴 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긴 밤은 근심바다의 첫 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아득한 사막이 되더니 필경 절망의 성(城) 너머로 가서 악마의 웃음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 밤을 깨어서 일천(一千)토막을 내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때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는 여름밤이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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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박지현 문우 - 어청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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