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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 아침편지148

2024.9.13 이병기 <난초>

by 박모니카


‘우~아~해~요’ 김사인시인이 가람 이병기 시인(전북 익산출생, 1891-1968)의 시를 읽고 난 후 말씀하셨죠. 지난주에 이어 우리나라 시조시인의 대표, 이병기시인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해주는 강연에 참석했는데요, 어제는 그의 문학작품에 대한 말씀을 어찌나 재밌게 흥겹게 하시는지 저도 역시 시간 가는게 아까웠어요.

학창시절 그의 시, <난초> <별>을 한번쯤 읽어보고 노래해 보았을텐데요, 단순히 한국 현대시조의 거장이니, 독립운동가니 하는 수식어 이외에도 다른 이력을 통해 알지 못했던 그의 삶을 듣고, 또 문학에서도 시조의 변천사, 또 다른 뜻을 함축한 여러 시조작품 들을 만났습니다.


가람의 시조 특성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은 ‘선비의 고결한 정신 같은 한글어사용’이라는 표현인데요, 약간은 덜 성숙되어 보이는 초기작품들을 거친 후 <난초>와 같은 시조가 완성되었다는 사례를 들었어요. 가람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학자 할아버지, 스물살이 거의 되어서야 소위 초등학생으로 입학하여 신식공부를 한 이야기들, 독립만세 운동을 전후로 달라지는 그의 작품속 한글사랑,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의 독립을 향한 역경과 교육자, 문학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가 남긴 엄청난 분량의 일기장과 그 속에 담긴 작품들... 강연자 김사인 시인의 느리고 느린 말투에 버물려져 잘 들었습니다.


저는 다행스럽게도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여서 그런지, 어떤 강연자의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들어봅니다. 강연자가 강연의 내용, 발성, 진행 등이 매끄럽지 못할지라도, 전하고자 하는 알짜배기를 끄집어서 내 것으로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끝까지 들으면 분명 한가지 이상, 강연자의 강연 의도를 알 수 있는 귀한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네이버, 구글박사가 똑똑하다해도, 사람이 직접 들려주는 말에는 다른 빛과 에너지가 있어서 저는 강연장에 가는 걸 좋아하나 봅니다. 어제도 그런 경험을 하고 룰루랄라 하며 군산으로 돌아왔네요. 가람 이병기의 생가가 가까운 곳에 있으니, 다시한번 가보려 하고요, 분명 강연을 들은 만큼 생가와 문학관을 바라보는 눈높이도 달라져 있을겁니다. 오늘도 추석맞이 부침개 만들기 봉사활동이 있다해서 출동~~ 오늘은 가람선생의 난초 연작시 몇 편 읽어보시죠. 봄날의산책 모니카.

이병기 - 난초(蘭草)

1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르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9.13난초.jpg

<문우 박지현 님 사진, 군산새벽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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