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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150

2024.9.15 이상국 <도둑과 시인>

by 박모니카

저녁바람은 선선하게 부채질하고 밝은 달이 휘영청 밤하늘에 솟으니, 사람들이 어찌 나오지 않겠어요. 너무 이른 저녁, 집에 돌아가기 싫었던 제 마음을 붙잡은 은파호수의 밤 풍경. 이름모를 사람들과 섞어서 버스킹 무대관람도 했답니다. 버스킹 주인공들은 보름으로 가는 달을 뒤로하고 그 빛을 받으며 노래 불렀는데, ‘참 자리하나도 명당일세’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저도 마치 고향에 와서 휴식을 취하는 이방인 느낌으로 앉아서 그들의 음악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글이라는 흔적은 참 무섭습니다. 집에 돌아와 ‘달과 추석’이란 키워드를 넣고 어떤 멋진 시가 있나하고 검색하는데, 어디서 본듯한 글 하나가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클릭해보았더니, 1년전 이때쯤 제가 쓴 아침편지더군요. 달을 노래했던 옛 한시들의 멋진 표현을 들려드렸던 흔적이 고스란히~~. 한번 더 말씀드릴테니, 올해는 달을 보며 이 표현 한마디씩 웅얼웅얼 함께 해봐요.^^


고려시인 원천석, ‘은쟁반으로 솟구친 달’, 진화의 ‘표주박으로 푸른 허공 씻은 후 나온 달’, 조선시인 기대승, ‘수레바퀴 하나 높이 떴네’, 중국시인 이백, 봄부터 가을까지 약을 찧고 있는 토끼 사는 곳‘ 등을 언급했군요. 요즘 읽은 한시에는 소동파의 ’은하에 소리없이 굴러가는 옥쟁반‘, 이색의 ’휘파람 부는 보름달‘ 등의 표현도 있었어요.


딸이 새벽차를 타고 귀향한다고, 저는 익산으로 딸마중나갑니다. 젊은시절, 타향살이 할때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속에 바로 추석행렬 제모습이 있지요. 저는 그 엄청난 추석교통행렬을 즐겼던것 같아요. 집에 도착하면 귀향전쟁을 이기고 온 승자처럼 부모님의 환대를 받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뭐하나 잘난것도 없었던 딸의 귀향이었는데 말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그런건가 봅니다.


추석이면 생각나는 이상국의 <도둑과 시인>, 추석날 들어온 도둑에게 보름달빛 마저도 숨겨주고, 그림자처럼 달아나라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이 참 따뜻하지요. 혹여나 제 집에 도둑이 온다면 저도 다 가져가라고 하고 싶은 맘이 들게하는 시 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도둑과 시인 - 이상국

어느 해 추석 앞집에 든 도둑이

내 차 지붕으로 뛰어내리던 밤,

감식반이 와서 족적을 뜨고

나는 파출소에 나가 피해자 심문을 받았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그리고,

하는 일 등을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달려라 도둑」이라는 시를 썼다

들키는 바람에 훔친 것도 없으니까

잡히지 말고 추석 달빛 속으로

그림자처럼 달아나라는 시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경찰서에서 그 사건을 불기소처분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나라 경찰은 몰라보게 편리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도둑의 무게만큼 찌그러진 차

지붕을 새로 얹는 데 든 만만찮은 수리비에 대하여서는

앞집은 물론 경찰도 전혀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 시로 원고료를 소소하게 받긴 했으나

그렇다고 이미 발표한 시를 물릴 수는 없고

그래서 나는 그 도둑이라도

이 시를 읽어주었으면 하는데.......



<특별 시 한편 더...>


달려라 도둑 - 이상국


도둑이 뛰어내렸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

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

―글쎄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네랑 거실에서 술 마시며 고스톱을 치는데 거길 어디라고 들어오냔 말야.

앞집 아저씨는 아직 제 정신이 아니다.

―그러게, 그리고 요즘 현금 가지고 있는 집이 어딨어. 다 카드 쓰지. 거 돌대가리 아냐? 라고 거드는 피아노 교습소집 주인 말끝에 명절내가 난다.

한참 있다가 누군가 이랬다.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이웃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밤이슬 내린 차 지붕에 화석처럼 찍혀있는 도둑의 족적을 바라보던 나는 그때 허름한 추리닝 바람에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한 사내가 열나흘 달빛 아래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노래에 맞춰 흥겨운 어느 노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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