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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154

2024.9.19 유영종 <9월이 가기 전에 보내는 연서>

by 박모니카

더위가 꺽이지 않아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이었다는 댓글들이 많을 정도로 매일 한 여름날씨. 책방 화분에게 물을 주어도 이내 목마른모습과 추석연휴라는데 말랭이까지 오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을 보면 분명 더운 날씨 탓도 있었으려니 합니다. 그래도 긴 연휴는 끝나고 일터로 돌아가려는 심기는 걱정거리겠지요. 저는 빨리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데...


어제부터 저의 일상으로 돌아와서 할 일을 하고나니 맘이 개운했습니다. 보충수업하면서 학생들과 수다, 출간예정작 교정마무리, 사이사이 책도 읽고 음악도 즐기고요. 학생들이 추석 잘 보내셨냐는 인사에 고맙다는 대답을 하면서 송편도 못줘서 미안하다 했는데, 말이래도 이렇게 나와서 공부하니까 좋다는 애교도 부리는 학생들을 보며 기쁜 맘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죠. 역시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 법... 오늘 맛난 간식먹기로 했지요^^


추석때 만난 조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지요, 꼬물꼬물 거리며 기껏해야 퇴청마루 한자리만 차지했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제는 제 부모 형제어깨를 감싸주며 토닥거리는 건강한 청년들이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가족수가 많은 시댁에서는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서른이 넘었어도 아직 결혼하지 않은 조카들이 많아서, 일부러 꼰대소리 들을 준비하고, ’결혼 빨리해야한다‘라고 하고, 대학수험준비생들에게는 ’공부만 열심히해라, 홧팅‘ 이라고 말했지요. 아이들도 농담의 농도를 아는지라, 서로 대화를 주고 받음에 유쾌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리는 물러나야하고, 자식들의 자리는 앞서 나와야 하는 것이 이치이지요. 말 그대로 ’세대교체‘. 정도(正道)어굿나지 않게 집안의 리더가 줄지어 서 있음을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손님들과 만나네요. 누수되는 수도꼭지를 고치러 오는 기사님, 말랭이행사를 논의하자는 주무관님, 시인 신석정을 말할 또 다른 시인님... 그 와중에 추석 반찬이 많아 얼른 먹어버리자고 주문서를 내미니 후배가 손을 번쩍 들어서, 있는 반찬에 밥 한끼 차려주어야겠습니다. 사는 밥도 아니고 있는 밥 먹으며 수다떠는 재미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요. 저의 허물을 알 것 다 아는 벗들과의 밥상수다. 책방에서 멋진 그림 한장 나오겠습니다~~ 유영종시인의 <9월이 가기전에 보내는 연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9월이 가기 전에 보내는 연서 - 유영종


그대 가슴에 숨어 있는 정

9월이 가기 전에 보고 싶어

붉게 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두 쓸어갈

바람 같은 사연이지만

당신께 새겨두고 싶은 한마디

여적 품고 있었던 사랑

나를 벗어주고 싶었고

그대를 덮어 주고 싶었던

마음의 잎새가

해맑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

부서져 내리는 기분을 감싸주듯

안아주고 싶어졌습니다


잊었던 듯 찾아와

노랗게 다가오는 은행잎


숲길을 걸으며

함께 '시몬'이 되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마루 밑에 울던 귀뚜라미

시월이 오면

방안으로 들어와 노래하듯

그대

내게 찾아들어

새 노래로

울어주리라 기다립니다


그땐 우리

깊은 겨울을 맞는다 해도

낯선 곳을 향해 떨림의 뿌리가 된다 해도

연리지처럼 부둥켜안고 뻗어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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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에 찾아온 초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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