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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153

2024.9.17 윤인애<선물> /정희성<추석달>

by 박모니카

길게 느껴졌던 추석연휴도 끝나는 날. 초저녁에는 구름에 가려 보름달도 못보나 했는데 소원을 빌고 싶은 제 맘을 알았는지 휘영청 둥근달이 말랭이에 나타났어요. 혹시 몰라 달을 볼때마다 짬짬히 소원을 빌었지만 그래도 진짜 보름달을 보며 두손을 모으는것이 최고죠. 귀가 전에 오래토록 밤하늘의 밝은 달 보며 두루두루 이사람 저사람 얼굴을 달 속에 넣어 안부를 전했답니다. 이런 명절문화가 있으니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과 얼굴보며 서로 웃으니... 참 좋지요. 부디 제발 사라지지 말고 대대손손 이어지길 기도했어요.

시댁과 친정에서의 성묘모습이 달라요. 시댁은 교회를 다니는 큰 며느리 주관하에, 간단한 기도로 조상들께 감사인사를 하고요, 친정에서는 꼭 절을 하지요. 어제도 남편은 막상 자기 부모의 성묘에서는 절을 하지 않았지만(시댁의 여러 사람이 교회문화라서 서로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죠), 제 친정아버지를 뵙는 자리에서는 꼭 절을 합니다, “할아버지는 절 받으시는거 좋아해, 자 하자, 얘들아.” 라고 말을 하면서 제 아들딸과 함께 하지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전통문화의 고수가 진정 우상숭배인지 등을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쨌든 저는 말랭이책방을 닫고, 버티컬을 내리고 방안에서 글쓰고, 책읽고, 물소리 새소리 영상보고, 출간예비작가 글고침하고~~~ 그러다보니 추석날이 다 가버리더군요. 군산의 어느 곳에서 명절맞이 행사라도 했는지 궁금했지만, 한번 들어앉은 채 몇 시간을 꼼짝안하고 의자와 찰떡꿍이 된 저를 보고 스스로 별스러움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오늘은 딸아이도 상경하고, 저도 역시 고등부 보충수업도 있으니, 말이 휴일이지 일상 궤도로 돌아오는 시간인데요. 하지만 이대로 보낼 순 없고, 짬 시간을 내서라도 기억거리 하나를 만들어볼까해요. 물론 아직까진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요. 분명한 것은 오늘 꼭 읽다만 한 권의 책읽기 마무리와 걷기 1시간 정도는 꼭 해야겠어요. 오늘도 추석관련 시인데요, 혼자 읽기 아까워서 두 편 소개하고 싶어요. 윤인애시인의 <선물>, 정희성시인의 <추석달> 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선물 – 윤인애


지난해 추석

두 시간 거리에 사는 시인께

- 보름달이 참 밝습니다

문자를 띄웠더니

이곳엔 달이 오지 않아 쓸쓸하다고

날아든 답장이

홀로 비운 술잔 같다

마침 내게는 두 개의 보름달이 있어

연못에 걸린 달을 급행으로 보내주고

빈자리에는 흰 구름 한덩이 걸어 두었다


도착했노라,

소식을 듣던 깊은 밤

시인의 마을에서는 달도 시를 쓰는지

계수나무 아래서 은유를 즐기고

떡 방앗간 토끼도 별을 빚는다는데

이번 한가위에는

교통체증으로 복잡할 하늘길 피해

덜 여문 달이라도 서둘러 부쳐야겠다


추석달 – 정희성


어제는 시래기국에서

달을 건져내며 울었다

밤새 수저로 떠낸 달이

떠내도 떠내도 남아 있다

광한전도 옥토끼도 보이지 않는

수저에 뜬 맹물달

어쩌면 내 생애 같은

국물을 한 숟갈 떠 들고

나는 낯선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보아도 보아도

숟갈을 든 채 잠든

자식의 얼굴에 달은 보이지 않고

빈 사발에 한 그릇

달이 지고 있다

말랭이마을 보름달
오른쪽 작은 하얀점읔 토성이라고 하네요(오선숙문우작품)
달의 얼굴이 너무 두드러지면 신비로움이 줄어들지요^^
과수원 사과들이 익어가는 소리
요리사 시동생이 준 시원한고기냉면으로 맛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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