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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an 03. 2021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2020.8.8(장마비와 독서)

장맛비 촉감은 심야 독서의 안내자 


베로니크 드 뷔르의 <체리토마토파이>, 올봄 동네책방 여행 차 전주 소소당에 갔다가, 책표지에 있는 붉은 체리와 초록색 잎사귀의 커버를 가진 책 한권이 보였다. 

400여 쪽이 넘는 책을 넘기면서 90세의 프랑스 할머니 일기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궁금했다. 특별히 나의 노년을 기약하며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저 먼 나라에 사는 프랑스 할머니와 내가 가지는 공통점이 이렇게 많을 소냐 싶을 정도로 유쾌하고 행복하게 읽었다. 

7월5일에 읽기 시작하여 딱 한 달만에 정독을 마쳤다. 빨리 읽으면 할머니와의 인연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쉬워 이 책 역시 다락방 속 곶감 빼 먹듯이 달콤하게 읽어나갔다.


일기의 첫머리


-겨울이 물러났다. 커튼을 열고 창살 너머를 바라본다. 호두나무는 아직 잎이 돋지 않았지만 밤나무는 벌써 깨어났고 줄지어 뻗은 개암나무들도 푸릇푸릇한 기운이 돈다. 창을 열었더니 공기가 상쾌하다. 동장군이 완전히 꺾인 건 아니지만 겨울의 끝자락과 성급한 봄기운이 그럭저럭 어우러져 있다.(p.9)-

-내 이름은 잔이다. 나이는 아흔 살이다. 키가 163cm였다. 당시로서는 작은키가 아니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발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발 치수는 그대로이지만 티눈이 보기 싫게 발 좌우로 튀어나와 있다.(p.11)-


첫장을 펴니, 나이 90세만 아니라면 왠지 내 애기도 될 듯싶은 감성이 밀려왔다. 특히나 번역가, 이세진씨의 글 표현이 이 책의 구독을 더 당겼다고 생각했다.


-지난주말에 아들이 전해준 스크랩 기사를 읽었다. ‘수퍼시니어(supersenior)가 젊게 사는 비결은? 싸람을 싸잡아 지칭하는 신조어들이 참 끊이지도 않고 나온다. 기사에는 푸석푸석한 팔과 쪼글조글은 얼궁의 쭈구렁 할망구 사니이 딸려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로즈. 나이는 일흔일곱(아직 어린애네!). 이 여자가 수퍼시니어라는 건가보다. 아흔살의 수퍼시니어는 어떤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도 이 여자 못지않게 잘살고 있다고 본다.-

(봄, 4월11일. p.52)


-희한하게도 세월이 갈수록 죽음 앞에서 초연해진다. 심지어 가장 사랑앴던 사람들의 죽음조차 그렇다. 사별도 많이 겪어보면 익숙해지는 걸까. 추억에 눈물이 나고 가슴속에는 고독이 점점 더 두텁게 한겹한겹 깔린다. 고독이 우리를 에워싸고 세상과 괴리시킨다. 우리는 마치 두 갈래 강 사이에 사는 것 같다. 산자들의 강이 한 갈래, 죽은자들의 강이 또 한 갈래.-

(여름 7월15일.p.151)


-"휴대전화는 엄마가 집에 없을 때 연락을 받으라고 있는 거예요. 만약에 긴급 상황이라도 닥치면 어떡하려구요?“ ‘혹시라도...’나는 짜증이 났다. 긴급상황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 딸은 여러번 전화를 한 용건이 뭔지도 몰랐다. 휴대전화가 없던 옛날에도 다들 잘만 살았다. 지금은 언제 어느때고, 아무데서나, 건화를 건 사람이 누구든, 당장 받아야한다. 이 빌어먹을 휴대장치 때문에 우리는 이제 자유롭지 않다. 우리의 자취가 언제라도 추적당할 수 있다니 끔찍하다. -

(가을, 10월18일. p.243)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쓰러진 작은 나무들은 덤불에 누워 죽어가는 중이다. 그 앞쪽으로 휑하니 뚫려버린 산울타리를 보니 가슴이 아프다. 이 모든 광경이 생의 마지막을 느끼게 한다. 나무가 나이를 많이 먹으면 껍질이 벗어지고 이끼가 낀다. 다른 나무들의 성장을 방해할 정도가 되면 베어버린다. 그 다음에는 잘게 조각을 내여 땔감용 장작이 되든다, 목재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팔린다. 나도 말라 비틀어지고 벌레 먹은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수확하는 일꾼은 언제 나를 쓰러트리러 오려나. 아, 나는 저 호두나무처럼 엉뚱한 쪽으로 쓰러져 폐를 끼치지는 않을테다. 얌전하게 무너져 내릴터요, 나로 인하여 다른 생명이 멈추는 일은 없게 하리라.-

(겨울1월16일, p372)


-차츰차츰, 모두 떠나간다. 벗들의 빈자리는 영영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앞날이 나를 전처럼 끌어당기지 않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나에게는 미래보다 추억이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는 편이 더 좋다. 세피아색과 픅백일 때 이미지는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과거는 내 머릿속에서 고운 색을 덧입지만 미래는 어둡고 칙칙해서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흔 한해가 하루아침에 나에게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확 늙은 기분이 든다.-

(겨울, 3월1일. p.404)


-내일부터 봄이다. 마침내 다 지나왔다. 강 너머, 다시 소생하는 삶의 지대가 보인다. 내일이다. 그래도 수평선은 여전히 부옇고 멀게만 보이리라. 너울을 뒤집어쓴 것처럼 색깔이 흐릿하고 빛은 희끄무레하다. 내가 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 나의 마지막 겨울밤이다.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날이 될 것이다. 나는 겨울과 함께, 나의 마지막 겨울과 함께 잠들리다. 계절의 끝에서 햇살을 받으며, 종려나무 가지를 높이 든 채로.-

(겨울, 3월19일, p.427)


잔 할머니 일 년의 일기 속에 미래의 있을 내 삶의 모습을 얹혀보았다. 인생의 고비마다 맞아야하는 희노애락을 어떻게 하면 성실이 받아들이고 내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하느님이 나에게도 90세까지를 보장해준다면, 무려 40여년이 남았으니 무엇을 못하겠는가 싶은 열정이 쏟아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참고> 성석제의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은 혼자 실웃음 지으며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했으며, 모바일 그림작가 홍미옥의 <색깔을 모았더니 인생이 되었다>는 동년배 아줌마의 일상이야기에 공감, 나도 그림에 재주가 있었더라면. 아쿠야, 하고 싶은 것 천지에 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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