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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an 03. 2021

섬에 있는 서점 - 개브리얼 제빈

2020.8.24

책명: 섬에 있는 서점 - 

원서 제목은 <The Storied Life of A. J. Fikry>


100세 시대, 인생을 두 개의 막으로 나눌 수 있는 분기점 오십을 넘어서면서 처음으로 노년이란 말을 떠올렸었다. 가까이 보이던 것들이 흐릿해지고, 누군가의 말이 달팽이관에 콕 박혀지지 않았다. 어느 날 화장대 거울에서 보인 또렷한 목주름이 이마의 주름과 손을 잡더니 느닷없는 늘어난 체중과 외형은 나 스스로를 안타깝게 했다. 동갑내기 남편의 발병과 회복기간을 거치고 어느새 성인이란 표지를 들고 이향을 꿈꾸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나온 내 삶의 시간을 다시 보게 했다. 그때부터 어릴 적 꿈, ‘책이 방에서 세상을 꿈꾸다’가 되살아났다. 


큰 아이 유치원 때, 동화책 The Library(by Sarah Stewart)을 읽어주었다. 하늘에서 세상으로 뚝 떨어졌을 때부터 근시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서 오로지 책만 보고 살아가는 엘리자베스브라운. 평생을 읽은 책은 지역 도서관에 기증하고 책과 더불어 사는 노년을 보내는 삶, 내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에 강한 모티브가 되었다.


에세이에 매력을 느껴 나의 이야기를 써보자 라고 자극을 받았다. 소소한 일상 얘기를 글쓰기라는 무대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에 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읽다보니 책에서 얻은 내용을 남겨놓고 싶었다. 소위 서평이랄지, 독후감이랄지의 형태로 책을 읽은 흔적을 남겨놓는 즐거움이 생겼다. 또 남편과 함께 ‘길 위의 동네책방’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행 겸 책방 탐방도 한다. 얼마 전 어느 시골에 있는 동네책방을 찾아서 하룻밤의 독서여행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섬에 있는 서점-개브리얼 제빈>이다.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 커버스토리의 첫 문구. 나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섬에서 태어난 내게 ‘서점이 있는 섬’은 단지 환상에 불과한 말이 아니었다. 내가 태어난 고향 섬에서 주인공 피크리처럼 서점을 열고 지역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행복의 문이 될 수 있다면 하고 책을 펼쳤다.


이 책의 원 제목은 <The Storied Life of A. J. Fikry>이다. 출판사의 영업사원 어밀리아는 첫 고객서점으로 아일랜드 서점을 찾아서 빛바랜 글씨로 써 있는 간판을 읽는다.


-앨리스 섬의 유일무이한 순문학 공급처. 1999년 개점.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한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 - 

어밀리아와 피크리와의 첫 만남은 유쾌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둘의 부조화적인 취향이 사랑하는 연인이 되기까지, 서점의 주인이 되어, 섬 공동체의 마음의 중심이 되기까지 섬 안의 서점 역할은 마중물을 넘어서 사람 사는 세상의 꽃이 된다. 


섬에 있는 작은 서점 ‘아일랜드 북스’의 주인, 피크리는 아내와 함께 서점을 열었다. 얼마 후 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 산다. 부드럽지 못한 까칠한 성격은 책을 고르는 취향에도 마찬가지여서 갈수록 서점 운영이 어려워져만 간다. 게다가 자신이 아끼던 에드거 앨런포우의 희귀한 시집인 ‘테멀레인’을 도둑맞아 실의에 빠진다. 책방을 접을까를 생각하던 어느 날 서점에 한 아이가 앉아있는 걸 발견한다. 모리스샌닥의 동화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고 있는 예쁜 아이였다. 이름은 마야. 함께 있던 메모에는 이 아이를 맡아줄 것을 호소하는 마야 엄마의 글이 있다. 이후 마야를 입양한 피크리는 자신이 삶이 뜻하지 않은 방향,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야와 함께 살아가면서 피크리는 편견적이고 독선적인 독서취향에서 벗어나 교육학, 아동발달학에도 관심을 갖는다. 또한 어린이 동화책을 포함해 마야의 완전한 입양자격을 갖춘 아빠로서의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앨리스 섬의 홀아비이자 책방 주인인 피크리가 버려진 아이를 거두었다는 뉴스가 들끓는 가운데, 언제나 차갑고 냉혈한처럼 느껴졌던 피크리에 대한 동네사람들의 평판역시 한 겨울 냉기를 녹이는 한줄기의 강렬한 햇빛으로 바꿔진다. 덕분에 서점의 아기를 보러왔다가 책과 잡지까지 사는 여자들이 많아지고, 피크리 역시 서점 고객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다양한 책을 진열하고 추천하는 소통의 자세를 보여준다. 


어린마야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곳이 서점의 아래층이다. 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빠’라고 부르는 피크리가 늘 존재하는 곳이다. 마야는 책에 다가가는 첫 번째 방법이 냄새를 맡는 것이다. 그림을 세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이야기를 뽑아낸다. 글자를 몰라도 아침시간에 일곱 권까지 훑어본다. 때론 서점에 온 어린이 손님들에게 책을 골라주기도 한다.


어느 날, 피크리는 몇 년 전 만났던 나이틀리 출판사의 어밀리아가 생각난다. 그녀가 소개했던 리언프리드먼의 <늦게 핀 꽃>을 우연히 발견해서다. 처음의 인상과 달리 어밀리아에 대한 호감이 생기고 가끔씩 마야의 동화책을 들고 오는 그녀의 마음에 피크리의 감정이 달라진다. 그녀가 추천 했던 책을 늦게라도 신청하는 것으로 그녀에 대한 마음을 보이기로 결정한다.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나는 끝없이 찾았는데 겨우 기차 두 편과 배 한 척 거리였군요.”라는 말로 어밀리아도 피크리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둘의 결혼식에는 둘을 연결해준 책 <늦게 핀 꽃>의 한 구절을 읽는 것에 합의한다.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은밀한 두려움이 우리를 고립시킨다. 언제일지 모르는 어느 날, 당신은 사랑 받을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결코 혼자가 아니기에, 혼자가 아니기를 선택했기에.’


마야는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어 작가를 꿈꾸며 소설을 쓴다. 학교의 글쓰기 숙제에 제출한 작품<바닷가 나들이>가 우수작으로 뽑힌다. 이 작품은 마야와 마야의 친엄마의 얘기가 들어있는 자전적 소설. 바닷가 등대를 지나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은 주인공 메리를 그리며 마야는 엄마를 본다. 그런 마야를 보며 피크리는 섬에 있는 서점의 주인이 되고 마야와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은 대목을 전한다.


- 마야, 내게 어밀리아 이전에 다른 아내, 니콜 에번스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했었다. 나는 그녀를 무척 사랑했어. 그녀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아주 오랫동안 내 안의 커다란 부분이 죽어 있었다. 널 발견하기 전까지. 그녀의 고향 앨리스에 서점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었지. ‘서점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도 할 수 없지’ 라고 말해서 이 곳에 서점이라는 가게를 열었지.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음은, 말할 필요가 있을까? -


오랫만에 만난 엄마와의 대화에서 피크리는 편치 못했다. 

- “넌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을 필요가 있어.” 

“내가 왜요? 시대가 뭐 그리 대수라고요.” 이 세상 최고의 것들은 죄다 고기에 붙은 비계처럼 야금야금 깎여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대형 체인 서점이 있는 세상보다 더 나쁜 유일한 세상은 대형 체인 서점 ‘조차’ 없는 세상 이었다. 적어도 그런 대형 서점이 온갖 출판 쓰레기를 만 부씩 팔아치우는 동안 아일랜드 서점에서는 순문학을 백 부는 팔 것 아닌가! - 라고 말하며 그의 뇌가 두개골에 빡빡하게 끼인 느낌을 받는다. 


암 진단을 받은 피크리는 수술, 방사선 치료 등의 과정을 위해 격리 병동으로 옮겨진다. 면역체계가 무너져, 삶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을 만난다. 니콜의 사망 이루부터 마야 이전의 삶, 어밀리아 이전의 삶에 외로움이 전부였다. 

- 인간은 홀로 된 섬이 아니다. 아니 적어도 인간은 홀로 된 섬으로 있는 게 최상은 아니다. - 라고 독백한다.


방사선 치료 후 피크리는 호전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생각한 것을 다 말하지 못한다. 그의 두뇌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 마땅한 말을 못 찾으면 빌려 쓰는 거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내 인생은 이 책들 안에 있어. 이 책들을 읽으면 내 마음을 알거야.- 

그는 마야에게 말하고 싶어 하지만 단지 두뇌 속에서만 울린다.


- 우리는 우리가 수집하고, 습득하고, 읽은 것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 있는 한, 그저 사랑이야.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진정 계속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해.- 

그는 계속 말하고 마야는 알아듣지 못한다. 


피크리의 장례식 후 서점은 새 주인 피크리의 언니인 이즈메이와 책을 사랑하게 된 전직경찰 램비에이스에게 넘겨진다. 피크리의 문학적 취향과는 다른 또 다른 장르의 책들, 범죄문학 시리즈가 함께 진열되면서 서점의 존재는 여전히 이어진다. ‘자신들이 팔지 못할 것은 들여놓지 않음’이라는 메모와 함께.


동네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책과 사랑 이야기 <섬에 있는 서점>. 소설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로맨스, 스릴러, 반전, 비밀은 독자로 하여금 롤러코스터를 타고 느끼는 흥분과 호기심을 충분히 이끌게 했다. 더불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특색 있는 동네서점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주인공 A.J. 피크리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이웃들에게 책으로 쌓을 수 있는 담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점의 기능이 단순히 책을 파는 역할을 벗어나 독서 모임, 저자 사인회 등의 새로운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각 장마다 들려주는 수많은 문학작품에 대한 논평 또한 흥미로운 읽을 거리였다.


피크리가 보여준 책과 사람 그리고 세상이라는 연결 고리는 인간의 삶에서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말해준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라는 책 속의 말들이 다시금 울려온다.



<참고>

끝으로 군산의 동네책방 중 한 곳이 문을 닫는 현실을 보며 동네책방의 역할에 대해 기고한 글로서 마무리 하고 싶다. 


- 동네서점은 동네우물과 같다. 구시대적인 아날로그 감성에 젖어서 옛날로 회귀하려는 발상이 아니다. 동네우물은 마을의 중심에서 사용하는 사람 모두의 것이었다. 함께 잘살며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생명의 원천이었다. 모두의 애경사를 들어주고 풀어주며 삶의 지혜를 길어 올렸던 두레박은 바로 생명의 조종타였다. 


디지털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생명수는 상수도에서 나온다. 그 물은 직선으로 고속이다.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어 개인에게 배달된다. 각 개인은 받을 때 까지 그 어떤 이웃의 이야기도 듣지 못한다. 그러니 물의 소중함을 모르며 이기적이다.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이 그렇다. 


지역의 동네서점은 공동우물이다. 맑고 깨끗하게 가꿔야 모두가 건강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서점의 존재는 그 지역과 지역민의 지혜와 건강의 척도이다. 디지털시대의 시스템을 통해 얼마든지 개별적, 사회적 지적 네크워크를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혼자 살수 없음을 안다. 생존은 공동의 가치에서 나옴을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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