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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an 03. 2021

사는게 참 꽃 같아야 -박제영

2020.8.2(장맛비와 꽃 이야기)

장맛비 소리로 새벽 독서가 즐겁다

장마비를 이길 재간이 없는 아침을 또 맞는다. 방송시청을 접은 지 어언 1년일지라도 세상 돌아가는 속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의 폰을 없애지 않는 이상.


새벽잠을 깨어 소리를 들으니 밤새 끊임없이 비가 오는 중이었다. 토요 봉사활동으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을 만나는 날인데, 이 비를 뚫고 오라고 하긴엔 너무 하겠지 싶어 담당자와 상의 후 취소했다. 봉사자 학생들도 아마 내 맘 같았으니라. 그러나 한 마디 덧 붙였다.

“얘들아, 봉사활동 취소 됐으니, 독서를 하는 주말이길 바래.” 라고.


지난 며칠간에 걸쳐 읽었던 책들이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어서 다시 훑어보았다.

꽃이야기를 들려주는 박제영의 <사는게 참 꽃 같아야>, 김민철의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사는게 참 꽃 같아야>는 작년에 구입해서 계절마다 살살 펼쳐보고 감동하는 책이다.

올해 봄에도 ‘벗꽃’편의 <꽃 좀 보세요>을 읽으며, 나도 역시 환장할 봄을 기억했다.


꽃비가 내린다

꽃비에 젖었으니 누군들 속살을 내어주지 않으랴

꽃잎같은 속살들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봄은 

환하다 

환장할!

봄은 얼마나 야한가

박제영<꽃좀 보세요> 중에서


3년차 텃밭가는 길의 한 담장에는 여름날 능소화가 만발했다. 그전에는 몰랐었는데, 박식한 남편의 설명에도 귀담아 듣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이 꽃이 눈길을 잡았다.


-중천에 뜬 해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여름날, 담장위로 연붉은 꽃이, 활짝 핀 꽃이, 꽃 핀채로 속절없이 뚝뚝 떨어지고 나면, 이를 슬퍼하듯 하늘에서는 굵은 비가, 장맛비가 뜨겁게 내리기 시작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염천의 꽃, 능소화라는 꽃이 있습니다(p.151) -


누가 봐주 거나 말거나

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뚝

떨어지는 어어쁜 슬픔의 입술을 본다

;

;

어리디 어린 슬픔의 누이들을 본다

나태주 <능소화> 부분


또 하나의 여름꽃, 접시꽃이 빨강, 분홍, 하양색으로 사진에 찰칵 소리를 만들게 했다.

어느집 담장 아래, 어느 마을 초입이라고 쓴 작가의 말처럼, 나의 텃밭길에도 같은 모습의 담장을 가진 마을입구가 있다. 그 곳에 나의 눈높이에서 마주치는, 기다란 줄기에 매달리듯 피어 있는 큼직한 접시꽃(p.170)이 있다.

접시꽃은 시인 도종환의 시집에서 일등 낭독감으로 애용된다. 시인의 아내와의 애절한 사랑을 절절히 들려주는 시 구절이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도종환 <접시꽃당신> 부분


김민철의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는 맛있는 것을 몰래 숨겨 놓았다가 소리없이 야금야금 먹는 새벽 간식이다. 

작가 박완서의 작품 속에 나오는 꽃들을 김민철 작가의 말과 글로써 재 해석한 책이다. 

‘작은 들꽃까지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긴 박완서는 진정 꽃의 작가다’ 라고 말했다. 


오늘은 <옥상의 민들레꽃>이란 작품에 나온 민들레를 보면서 살아갈 힘을 주는 작은 희망으로 표현했다. 계속되는 비에 지인들의 마음이 다운되어 있을 것을 염려하여, 읽은 부분을 사진으로 올려주며, 이 글 읽고 즐거운 주말 보내라고 기원의 쪽지도 보냈다.


- <옥상의 민들레 꽃>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한 고급 아파트 주민들의 세태를 바라본 동화다. 1979년 출간된 박완서의 어른을 위한 동화집<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 수록된 글이다.


 화려한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노인들의 자살사건을 보고 한 어린‘나’가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어린‘나’의 경험에도 자살을 하려했던 경험이 있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는데 시멘트로 도배되어 있는 옥상의 한 구석에서 한 숟갈 만큼의 흙속에서 피워난 민들레를 보고 부끄러운 생각에 자살을 포기했다.(p.63-64) -


민들레의 말은 문가에 둘러쌓여 있다해서 ‘문둘레’, 밋밋한 들판(민들) 어디서나 잘 자란다해서 ‘민들에’, 잎에 있는 톱날처럼 생긴 결각이 사자의 이빨을 닮았다해서 ‘dandelion'으로 불리운단다.


박완서 역시 여름 꽃 능소화를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언급했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을 받는다.

 성공한 의사로 나오는 40대 주인공과 30여년 만에 만나는 초등 동창생과의 만남 속에 능소화를 두고 이를 표현이 나온다. 


-‘그 꽃은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하여 쨍쨍한 여름날에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괜히 슬퍼지려고 했다. 능소화가 만발했을 때 베란다에 서면 마치 내가 마녀가 된 것 같았어. 발 밑에서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면서 불꽃이 온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p.43)-


작가들이 세상을 관찰하는 능력은 남다르다. 원래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 남다르게 관찰하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어쨌든 나는 이 분들이 펼쳐좋은 마당에 가서 짐짓 둘러보며 모른체 맛있게 먹을 뿐이다.

또한 나도 역시 세밀하게 자연을 관찰하고 사고하는 버릇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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