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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162

2024.9.27 도종환 <못난꽃>

by 박모니카

’열심히 살아라 라는 말, 참말이고 말고‘... 타고난 재능은 부족해도 무엇이든 열심히만 하면 잘 살 줄 알았던 때가 있었죠.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때에도 말만 ’열심히‘라고 했지 실천은 못했습니다. 오히려,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니 열심히 사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조금씩 알아갔죠. 지금도 저는 그 여정에 서서 걸어갑니다.


눈 뜨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가만히 앉아 마음의 눈을 감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어떤 일이 있었더라... 지나가는 작은 화면들을 클릭하니 잠시 멈춰 보여주는 저의 어제. 마음에 콕 와닿는 장면이 무엇인지 찬찬히 봅니다. 그중 하나가 봄날시선집 1호를 인쇄소에서 찾아와서 전주 시인들 몇 분에게 인사드린 장면이 있군요.

<봄날의 산책 출판사>라는 이름으로 지역시인들의 시집출판을 한 지 벌써 4번째... 그런데 왜 1회 냐구요? 언젠가 이분의 시집을 출간할 기회가 있다면 하고 1번을 남겨두었죠~~ 이번에 출간을 맡겨주신 분은 신인도 아닌 여섯 번째 개인시집을 내시는 베테랑시인이죠. 이쯤 되면 출판사도 제법 이름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아니면 출판사대표가 제법 전문가 포스로 시인의 작품을 최고로 만들어줄 역량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를 선택하여 ’시집 좀 만들어 주세요’ 한 이면을 혼자서 들여다 보았죠. 이유는 오로지 하나! ‘다른 건 몰라도 열심히 사는 사람, 모니카’여서 그러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든, 어떤 경우이든 일은 일 답게하고 사람 정은 정 답게 대하고 싶습니다. 일을 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나 ‘반드시’와 ‘먼저’를 넣어 수식했을 때 어긋나지 않는 구별심을 키우려 하지요. 때론 정 없다 라는 말을 들을지라도, 원칙에 어긋나는 경우라면 정에 매달리지 않고 구별이 모호해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려구요. 아마 오늘도 저는 그런 시간을 갖게 될 거예요. 그 첫 번째가 친정엄마와 목욕동행이군요... 오늘의 시는 어제 소개했던 민중시인 박영근 시인의 짧은 일생을 추모한 시 중 도종환 시인이 쓴 <못난 꽃>이란 시를 소개합니다.


못난 꽃 - 도종환


―박영근에게

모과꽃 진 뒤 밤새 비가 내려

꽃은 희미한 분홍으로만 남아 있다

사랑하는 이를 돌려보내고 난 뒤 감당이 안되는

막막함을 안은 채 너는 홀연히 나를 찾아왔었다

민물생선을 끓여 앞에 놓고

노동으로도 살 수 없고 시로도 살 수 없는 세상의

신산함을 짚어가는 네 이야기 한쪽의

그늘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늘 현역으로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툭툭 뱉으며

너는 순간순간 늙어가고 있었다

허름한 식당 밖으로는 삼월인데도 함박눈이 쏟아져

몇군데 술자리를 더 돌다가

너는 기어코 꾸역꾸역 울음을 쏟아놓았다

그 밤 오래 우는 네 어깨를 말없이 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점 혈육도 사랑도 이제 더는 지상에 남기지 않고

너 혼자 서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빗속에서 들었다

살아서 네게 술 한잔 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살아서 네 적빈의 주머니에 몰래 여비 봉투 하나

찔러 넣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몸에 남아 있던 가난과 연민도 비우고

똥까지도 다 비우고

빗속에 혼자 돌아가고 있는

네 필생의 꽃잎을 생각했다

문학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목숨과 맞바꾸는 못난 꽃

너 떠나고 참으로 못난 꽃 하나 지상에 남으리라

못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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