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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Oct 04.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169

2024.10.4 전재복<흘러가며> / <시발>

집밥을 무진장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반찬을 준비하고, 고구마밥도 지었네요. 거의 외식에 의존하는 제가 오랜만에 부엌 도구들이 움직이니 즐겁더군요. 아마도 그저께 황금벌판을 보고 와서 시 몇 편 읽고 나니까 쌀과 사람과의 관계가 다시 보였던 것 같아요.     


군산시는 ’시간여행축제‘기간이예요. 특히 오늘부터 일요일까지는 본 무대가 시작됩니다. 말랭이 마을을 포함한 역사거리 곳곳에 교통통제가 있구요. 마을축제도 연장선으로 행사에 참여하는지라, 막상 시간여행축제를 즐기지는 못하지만 짬짬히 시간을 내어 돌아볼까 합니다.      


군산분들은 해마다 하는 행사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외지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가을의 주요관광지로 군산을 선택한다고 해요. 시간여행축제의 제어는 ’시민이 함께 만드는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축제‘인데요. 다양한 퍼포먼스로 시공간에 펼쳐질 마술같은 사람들의 잔치에 참여해보세요.     


저도 내일 있을 전재복시인의 출간회를 비롯한 마을 행사준비로 오늘은 더 일찍 움직이네요. 어젠 의자 몇 개 추가하는데 비가 와서 남편이 각시 비 맞지 말라고, 일일이 노동(?)을 하더군요. 새삼스레, 혼자 살아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네요.^^     


전재복 시인의 6집의 특징은 ’군산이야기‘입니다. 많은 지역 시인들이 군산을 노래하셨겠지만, 전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놀지 않았습니다. 소위 ’유희‘하지 않았지요. 서정적이면서 때론 서사적,시사적인 언어로 숨이 약한 군산에 ’깊은 심호흡을 불어 넣어 생명체‘로서 기능하게 했습니다. 적어도 저는 전 시인의 시를 그렇게 읽었기에 제 이름을 달고 출판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대상으로 ’생명‘을 기능하게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 특히 시를 쓰는 사람의 임무가 막중하기도 하지요.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양날의 칼을 정의롭게 쓸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문인입니다. 오늘은 전재복 시인의 시 <흘러가며>와 <시발>을 들려드립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흘러가며 - 전재복     


또르르 구르는 물의 씨알

어디로 갈 건데?

내려가는 거야 아래로

순종을 배우는 거지   

  

순하게 무리를 지어

흐름이 된 도랑물

골골 개울물로 흐르다

급물살을 타 정신을 놓기도    

  

졸졸졸 정다운 시냇물

드디어 득음을 했구나   

  

서두르지 마 멈추지도 말고

거꾸로 자라는 풍경을 그려 넣고

강으로 흘러들어 강물이 된다

길게 누워 숨을 고르며

떠나온 것들을 뒤돌아본다    

 

수십 길 우물 속에 다리 뻗고

깊어지기로 한 샘물

심통을 부리며 투덜대던 흙탕물

모두 잘 있는 거지?     


스치고 흘러온 자리마다

약속처럼 생명은 싹이 터

서로를 보듬고 있네   

  

흘러가야 해

더 둥글어지기 위해

바다로 가서 성적표를 확인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야

드넓은 가슴이 되어

다시 치솟는 꿈을 꿀 테야    

 

생명 있는 것들의

마중물이 될 거야

해처럼 환한        

  


詩勃(시발: 글귀 시, 노할 발) - 전재복     

     

모국어 말씀을 배울 때

고운 혼을 담아 가려 놓으라

어버이와 스승께 배웠으나

오늘은 회초리 꺾어 드리고

시원하게 욕 한 마디 하련다

시발!     


총칼을 드는 법은 배운 적 없으나

오늘은 잘 벼린 화살촉인 양

내 붉은 혀를 팽팽한 활시위에 건다

시발!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수치를 들이대지 말라

당장 피 토하고 죽지 않으니

안심하란 말인가

서서히 죽는 줄 모르게 죽여줄 테니

걱정말란 말인가     


시발!

대대손손 죄 없는 우리 새끼들

독이 쌓여 죽어갈 텐데     


총칼로 우리 강산 피로 물들이고

명경같은 조선의 혼을 짓밟던

몹쓸 놈의 악령이 되살아났구나

시발!     


노여운 말씀으로

시방은 내 입을 더럽히지만

죽어도 그냥은 죽지 않으리니

기억하라 우리가 대한국민이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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