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5 전재복 <만약에> / <마지막 갯벌 수라>
시월이 상달이라 하더니 그 말 맞나봅니다. 전국이 축제로 가을 바람 났어요. 군산 시간여행축제도 있고 하니, 굳이 타지의 축제까지 소개할 오지랖을 닫아두렵니다. 어제 잠깐 짬이 나서 근대역사박물관 앞 무대에서 시낭송하는 <한시예> 회원님들의 낭송을 잘 듣고 왔어요. 오늘 시집출간 기념회를 하는 전재복 시인께서 무대 사회까지 보시더군요. 저는 무대만 봐도 심장이 뛰는 사람이라, 언감생신, 시낭송은 꿈도 꾸지 않지요...^^
오늘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보이더군요. 부스마다, ’근대‘라는 단어가 살짝 불편함을 주기는 했어도, 그 또한 군산의 지우지 못할 역사려니 하고, 기웃거려보았습니다. 타지의 다른 축제들도 가보시고, 무엇보다 우리 고향의 축제에도 꼭 눈도장, 발도장 찍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준비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지요~~
1주일 간 홍보한 대로 오늘은 ’봄날의산책‘이 주관하는 <전재복 시인 시집출간회>가 있습니다. 조촐하게 의자 50개만 준비했어요. 혹시나 더 오신다면 제 지인들 모두 ’일어섯‘ 이라고 엄포를 놓겠습니다.^^
떡은 두배수 가량 준비했으니, 오셔서 가을떡, 단호박설기 드시고요.
시인을 축하하기 위하여, 후배 시낭송가들이 시인의 시를 낭송하고요, 하모니카 연주가도 오시고요, 축사를 해주시는 분도 계셔요. 항상 제가 사회를 보았었는데, 저도 얌전하게 사진찍사 노릇하고 싶어서, 이번에는 멋진 사회자도 모셨습니다. 그녀는 전재복 시인의 제자입니다.
오늘도 말씀 드리겠지만, 저는 책을 파는 일이 제 임무 중 하나!! 저희 봄날의 산책은 해마다 책 판 돈 일부를 기부해왔습니다. 봄날의산책 출판사 이름을 달고 나오는 모든 책은 독자께서 주신 책값으로 늘 소외계층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음을 기억해주세요.
또 하나, 비록 1인 출판사 일지라도, 저는 작은 소신이 있습니다. 제 출판사를 만나면 그 누구라도, 작가에게 잊지 못할 출간회를 열어드려요. 글을 쓰고 남들에게 그 속을 내어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거대한 용기가 필요하지요. 그 두려운 맘에 추위를 이기고 돌아온 봄 햇살을 가득 안겨드리고 싶어서 제 스스로 약속한 일이죠. 혹시나, 글을 쓰고 계신가요? 용기가 없으신가요? 그럼 저를 찾아오세요~~
오늘은 남편이 활동하는 환경단체에서도 큰 일을 하는 날이죠. 부안 해창갯벌에 장승을 세우는 날이예요. 가까이 수라갯벌이 있고, 영화 <수라>의 감독과 영화출연진들, 그리고 환경과 생태를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큰 장승세우기 잔치를 해요. 저야말고 가고 싶은데 몸이 하나군요. 대신 전재복시인이 들려주는 시를 읽겠어요. <만약에> 와 <마지막 갯벌 수라>를 들려드립니다. 참고로 오늘은 제 수다도 길고, 시도 길고요. 그래도 읽어주세요!! 봄날의산책 모니카.
만약에 - 전재복
만약에 시간을 거슬러
전생 어디쯤에 살아진다면
사대부 양반가의 정경부인 따위
나는 싫소
가슴에 불도장을 수천 번 찍어
거북등같은 딱쟁이에
심장을 가둔 공로로
허울 좋은 또 하나의 족쇄
효자문 열녀문에 갇히는 건
더더욱 싫소
시간을 거슬러
내 맘 대로 살아진다면
시화가무에詩畫歌舞에 뛰어난 기녀가 되고 싶소
자족에 눈먼 사내들 눈 아래에 두고
참 멋을 아는 이 아니면
실눈도 뜨지 않으리
사랑 하나에 목숨 걸고
뜨겁게 불타올라 죽어도 좋으리
층암절벽 높푸른 솔이 되어
걸림 없는 바람을 품어보고
창공를 찌르는 대나무 되었다가
맑은 곡조 풀어내는
퉁소가 되어도 좋겠소
나 전생의 어디쯤 살아진다면
너 아니면 죽겠다는 당신을 꼭 만나
빠꿈살이같은 철부지로 살아도 좋겠소
욕심 없이 소박한 사랑에
눈멀어 살아도 좋겠소
마지막 갯벌 수라 - 전재복
<1.탄생>
일찍이 그럴 줄 알았당게
아득한 그날 하늘이 열림서부터
우람한 바다랑
땅끄트머리 가시내랑
첫눈에 불이 번쩍 튀더니
기언시 정분이 나더라고
밀쳐내고 끌어안고
저만치 도망갔다 우르르 달려들고
질펀한 사랑놀음 쪼매 거시기혔지
뻔질나게 오고강께
모래도 바시라지고 흙덩이도 가루 되고
진득진득 보드란 뻘밭이 되더랑게
한 번 발 디디면 사정없이 빠져들고
여지없이 생명은 깃들었지
몽실몽실 잘도 크더만
물고기랑 새들도 게랑 조개들도
생명 있는 모든 것들
새끼 낳고 번창하고 정들임서
그렇게 갯벌이 생겨불더라고
<2.풍요>
하루 두 번 굳은 언약처럼
밀물 썰물이 드나들며 비질한 갯벌
비가 내리면 빗물이 길을 내고
더러는 샛강도 흘러들어
세상 끝으로 뿌리 뻗듯 갯골을 만들었지
갯골 골짜기마다
흐르고 가두고 적셔가며
생명의 씨앗을 품어 길렀어
무량무량 너른 가슴에 안고 길렀네
생명을 키워내는 갯벌은
내일로 가는 약속이었어
<3.절망,분노>
포크레인 무섭게 쳐들어오고
불도저 사납게 밀고 와선
새만금방조제 길게 눕혀
바닷 물길 틀어막기 전까지는
소박한 꿈이 허락된 땅
그냥 갯벌이었어
33.9 km 장벽에 막혀 길 잃은 바닷물
돌아올 가망 없이 멈춰버리고
철없는 기다림은 주검으로 덮였지
흉흉한 바람만 유령처럼 떠돌았네
고기 잡던 손, 조개 캐던 손
그 손에 쥐어진 낫자루엔
시름만 잡초처럼 무성했어
<4.다시 희망을>
다 죽은 줄 알았어
죽어버린 갯벌처럼
사람의 마음도 죽음을 보았지
그런 10여년의 체념 뒤편에
“나 아직 여기 있어요”
가녀린 몸짓을 보내는 푸른 별의 신호
흰발농게 너였구나
쑥새야 너였어?
짱뚱어 너도?
말라비틀어진 희망을 다시 털어 입는다
늦었지만 우리가 지킬게
그 길이 한없이 먼 길 일지라도
또 가로막는 거대한 힘 앞에
손가락 한 마디라도
농게의 단단한 집게발인 양 치켜든다
비행장은 또 무슨 놈의 비행장
좀 내비두라고
제발 손대지 말라고
간당간당 남은 마지막 갯벌
우리의 숨통<수라갯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