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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Oct 11.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176

2024.10.11 한강 <서시>

우리나라 작가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 받았습니다. 어찌나 놀랐는지, 손도 눈도 마음도 떨려서 수업이 안될 정도였어요. 아마도 저만 그런 게 아니었을걸요^^ K 문화(드라마, 영화, 가수 등)영역에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문학이 큰 기둥으로 우뚝서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요.      


노벨문학상 후보에 우리 고장의 고은 시인을 비롯한 몇몇 작가들이 여러 번 거론되었어도, 항상 남의 나라 얘기 같았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작가인 일본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력하다는 일본의 호들갑을 제압하여 그 통쾌함이 더 컸습니다.      


뉴스 속보는 물론 외국에서도 ‘호외‘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엄청난 사건이며, 기쁨이며, 우리의 자랑입니다. 한 작가에 대한 세세한 정보는 뉴스나 지면을 통해 꼭 읽어보시고요. 오늘만큼은 문학인이든 아니든 우리나라 작가 한강씨에게 열렬히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시게요.     


저는 한강 씨의 작품을 시 같은 소설 <흰, 2016>으로 만났습니다. 작가가 언급한 65편의 소재들이 모두 ’흰‘ 범주에서 불려나온 매우 독특한 소설... 아니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럽혀지지 않고, 결코 더럽혀지면 안되는 ’희고 흰 시’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한강작가의 대표작, 광주 5.18이야기 <소년이 온다, 2014>, 제주 4.3사건 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 2021> <채식주의자, 2007>... 저도 4권 모두 읽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한번 읽어봐야겠어요. 특히 그녀의 첫 번째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는 아직 읽지 않아서 필독^^     


작가는 말했지요. ‘상처와 슬픔을 치유하지 못한 사람과는 작별할 수 없었다’라고.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면 아픔을 가진 사람들(광주사람, 제주사람, 또 다른 사람들)의 치유의 삶 속에 왜 우리가 함께 있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작가는 ‘생명’에 촛점을 두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밝은 이야기’를 쓸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대만땅이지요~~~ 한강시인의 <서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서시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음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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