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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Oct 16.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181

2024.10.16 이정록 <우표 > <의자>

‘시인의 서랍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강작가 신드롬으로 더욱더 시인들의 세상이 궁금해집니다.

아니, 모든 글쓰는 작가들의 서랍 속을 들여다보고 싶지요. 예전에는 연필 한 자루와 종이만 있었을 서랍속. 지금은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디지털 기계가 서랍이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의 만남이 서랍이 되었으니까요.     


지인들은 그림 그리고, 저는 옆에서 읽은 책이 이정록 시인의 첫 산문집 <시인의서랍>이었습니다. 이 시인의 <의자>라는 시는 마음에서 손꼽는 시 거든요.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이런 말이 나와서 쭉 읽어나갔습니다. -세상 모든 말의 뿌리는 모어(母語)다. 모든 말의 태반은 어머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주고받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참 재밌습니다. 이번 주에는 이 책으로 시인의 세상을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책방에서 시작한 동네카페 프로그램 ’어반스케치‘ 회원들이 그리는 솜씨들은 시간이 갈수록 멋있고요, 저는 그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자기가 움직이듯 들리는 소리는 활자로 저장됩니다. 역시나 그림에는 별 흥미가 없는 듯,,, 그래서 제안한 것이 ’작은 그림책 만들기‘

갑자기 눈이 번쩍, 제 목소리에 흥이 생기더니, 회원들의 그림 작품을 눈여겨 보았지요. 어떻게 하면 멋진 그림일기 작품집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요~~~오늘은 이정록 시인의 시 <우표>와 <의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우표 - 이정록     


우표의 뒷면은

얼어붙은 호수 같다

가장자리를 따라 얼음 구멍까지 뚫어놓았다     

침이라도 바를라치면

뜨건 살갗 잡아당기는 것까지

우표는 쩔걱쩔걱한 얼음판을 닮았다     

우표와 마주치면 언제라도

혓바늘 서듯 그대 다시 살아나

지난 몇십 년의 겨울을 건너가고 싶다

꼬리지느러미 좋은 화염의 추억에 초고추장 찍어

아, 그대의 입천장 들여다보고 싶다     

편지봉투를 불자, 아뜩하게

얼음 깨지는 소리며 빙어 뛰어 오르는 소리 올라온다

불면의 딱따구리가 내 늑골에다 파놓은 구멍들

그 어두운 우체통에 답장을 넣어다오     

저 얼음 우표가 봄으로 가듯

나의 경계도 소통을 꿈꾼다     

우표의 울타리, 빙어알만 한 구멍들도

반절로 쪼개지며 온전한 한 장의 우표가 된다     

우표의 뒷면에 혀를 댄다

입술과 우표가 나누는 아름다운 내통

입맞춤의 떨림이 사금파리처럼 싸하다     

그대 얼음장 안에 갇혀 있는 한

성에 가득한 혓바닥, 그 끝자리에

언 목젖을 가다듬는 내가 있다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어반스케치를 배우는 지인들의 작품 중에서... 글이 좋은 작품 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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