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5 문태준 <맨발>
다람쥐도 아닌데 책상 위에 고구마와 알밤을 놓고 주워먹다가, 학생들이 오면 하나씩 까서 주곤 하지요. 최근에 알밤을 많이 선물 받아서 나눠먹고 있는데요, 어떤 후배님은 말하길, ’저는 깐 알밤만 먹어요‘라며 귀엽게 사양의 멘트를 보내왔더군요. 사실 말은 안 했지만, ’세상 참 살기 좋~~아!‘라고 생각했어요^^
어제 내린 비로 아마 기온이 1-2도쯤 내려갔겠죠. 올여름의 혹서를 정확히 예측한 어느 기상학자가 말하길, 11월 2주차부터는 급격한 기온 하강으로 올겨울 역시 혹독한 추위가 온다고 했다네요. 벌써부터 의류와 난방 가전시장이 들썩거린다는 경제뉴스를 들었는데요. 더위보다 추위에 호들갑부리는 저야말로 지금부터 걱정이 되어서 학원의 난방 도구들을 들여다보았네요. 물론 더위도 추위도 멀리서 바라보면 다 제때 오고 제때 돌아가는 ’자연(自然)‘의 모습이니, 우리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요~~~
갈수록 기억력의 공간이 좁아져서, 뭔가가 생각나면 그때그때 확인하곤 하는데요. 어젠 갑자기 올해 책방에서 있었던 일들,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일들을 써 놓은 노트가 생각났어요. 책방 3년째, 말랭이 마을 입주 조건에 ’출판업‘이란 타이틀로 계약을 한바, 책 판매 플러스 출판물의 기록 역시 제게는 중요하거든요. 특히 지역작가가 봄날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길 소망하는 저의 소신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도 확인하고요.
예정돼 있었던 작가도 있었고, 뜻하지 않게 출간을 한 작가도 있었고요. 또 12월 예정 작가에게는 한 겨울보다는 ’따뜻한 봄날에 책 만들어 드릴께요’라는 말로 다그치지 않기로 결정하고 톡을 보냈어요. 시월이 중순으로 넘어가니, 제 맘도 이렇게 바쁜데 다른 사람들도 그러겠지 싶어서, 대폭 할인한 ‘여유’를 주기로 했어요. 사실 혼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종종 있는데, 어제도 그런 날이어서 그랬는지, 귀가 후에 또 잠만 잤답니다. 비록 늦잠에서 일어났지만, 머리가 명쾌해져서 오늘 시작이 가뿐하군요. 역시 서둘러서 이룬 일은 늘 구멍이 있기 마련인가봐요. 줄여야지요 구멍을! 아니 구멍이라도 받아들여야지요...라는 생각으로 오늘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모두 행복하시게요. 문태준시인의 <맨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