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9 류근 <그리운 우체국>
종이 위에 편지를 써 본지가 언제인지요, 언젠가 부산 감천문화마을에 갔더니, 높은 곳에 어린왕자의 형상이 있고, 그 곁에 우체통이 있더군요. 편지를 쓰면 1년 뒤에 받을 수 있었어요. 그때 마침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그들에게 보내는 제 마음을 편지로 썼는데, 정말 1년 뒤 편지를 받았지요. 문득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미지의 언젠가 만날 누구를 생각하며, 오늘은 편지 수신인을 꼭 집어서 생각하며 아침편지를 보내요. 물론 한 명은 아니랍니다. 오랫동안 알아 온 벗과 지인에서부터 한번도 만나지 못한 누군가도 있으니까요. 책방에 오신 분들을 중심으로 편지를 보내는데, 시가 있는 아침편지가 좋아서 이를 또 다른 분들에게 보낸다는 말을 듣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약간의 책무감도 들었답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서울행 버스를 타고 여행 가는데요. 어제 내린 폭우로 밤새 기온이 뚝 떨어졌겠지요. 서울의 광화문 일대에서 야외도서관이 열린다 해서, 여행을 기획했는데, 오늘도 비가 온다하고요... 아마도 뜻한 대로 맑은 여행은 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또 어떻습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맑으나 궂으나 다 계절에 묻혀서 가는 시간을 따라가면 되겠지요.^^ 산다는 것은 언제나 뜻하지 않은 우연성 돌개바람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죠. 그 여파로 만들어지는 더 멋진 세상이 있을테고 가다보면 오히려 우연히 만날 그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심이 커지니 더 즐거운 일이죠.
한강작가를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류근시인이 쓴 시가 눈에 띄어서 오늘은 류 시인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참 멋진 시인임을 그도 알고 저도 알고, 많은 이가 알고 있으니까요. 류근시인의 <그리운 우체국>에서 말한 그의 말처럼, 깨끗한 안부 한 잎 부쳐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는 오늘이길 기도하면서...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그리운 우체국 – 류근
옛사랑 여기서 얼마나 먼지
술에 취하면 나는 문득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선량한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우표 한 장 붙여주고 싶으다
지금은 내 오랜 선열의 손금 위에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시절
낮은 지붕들 위로 별이 지나고
길에서 늙는 나무들은 우편배달부처럼
다시 못 만날 구름들을 향해 잎사귀를 흔든다
흔들릴 때 스스로를 흔드는 것들은
비로소 얼마나 따사로운 틈새를 만드는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이별이 너무 흔해서
살아갈수록 내 가슴엔 강물이 깊어지고
돌아가야 할 시간은 철길 건너 세상의 변방에서
안개의 입자들처럼 몸을 허문다 옛사랑
추억 쪽에서 불어오는 노래의 흐린 풍경들 사이로
취한 내 눈시울조차 무게를 허문다 아아,
이제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가 지는 곳 어디쯤에서
그리운 제 별자리를 매달아두었으리라
차마 입술을 떠나지 못한 이름 하나 눈물겨워서
술에 취하면 나는 다시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거기 서럽지 않은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사소하게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 위에
깨끗한 안부 한 잎 부쳐주고 싶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