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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Oct 22.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187

2024.10.22 류시화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출판사의 대명사,’창비‘. 그 중 창비시선이 500회 기념집을 냈길래 읽는 중입니다. 창비가 시집을 내기 시작한 지도 50여 년이라네요. 출판사의 의지뿐만 아니라, 그 역사를 이어주고 있는 시인들, 그리고 창비시선을 사랑하는 독자들... 말 그대로 삼위일체의 아름다운 조합이예요.     


제가 글쓰기를 몰랐을 때에도 유명출판사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요. 책방을 차리고나서 책을 주문할 때마다 유심히 보는 것 중 하나가 출판사예요. 얼마 전 통계자료에 8만여 출판사가 등록되어 있는데, 실제로 책 1권이라도 낸 출판사는 10% 정도라고 하더군요. 요즘 한강작가의 수상소식으로 출판사의 이름도 덩달아 오르내리는데요. 한 작가의 책이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 뉴스에 당연하다 라며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제가 책방이름과 함께 쓰고 있는 출판사 ’봄날의 산책‘... 얼마만큼의 역사(?)를 가지고 갈까...를 생각해보기도 했네요. 누구나 책을 쓰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책 만들기를 쉽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건 단순히 책을 읽는 독자입장에서는 출판까지의 과정을 생각할 일이 별로 없으니 그럴 수 있지요. 그런데 제가 직접 해보니, 정말 쉬운 것은 없어요.      


작가가 준 원고가 완벽하다고 장담할지라도 책 출판까지는 더없이 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거든요. 항상 글쓰는 작가들과 책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던 책이었는데, 어제 창비시선집 50년의 역사를 보면서 새삼 출판사의 지고지난한 역사를 떠올려봤답니다. 그들의 수고에 보답하는 일, 첫째는 ’책을 읽는 일‘이겠죠. 오늘도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한 장이라도 보면서 출판사의 수고에도 고맙다 라고 소곤거리시길... ^^

 류시화시인의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류시화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

봄은 떠난 자들의 환생으로 자리바꿈하고

제비꽃은 자주색이 의미하는 모든 것으로

하루는 영원의 동의어로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로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으로

새는 비상을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실존으로

과거는 창백하게 타들어 간 하루들의 재로

광부는 땅속에 묻힌 별을 찾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

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건너와 내미는 손으로

오늘 밤의 주제는 사랑으로

사진제공, 박세원 문우(제주도 산방산과 주변 풍경을 보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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