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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Oct 23.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188

2024.10.23 신경림 <길>

울음의 색깔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한국화가 김호석화백은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민족 민중 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이 흘린 눈물을 ’검은 울음‘이라고 말합니다.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김호석 개인전 – 검은 울음‘이 24일까지 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어제 오전에 광주로 가을여행을 갔습니다.     


가는 내내 내리는 비의 풍경 덕분에 김제, 고창, 장성을 거쳐 광주까지, 수북이 산 위로 올라오는 안개와 짙노란 벼이삭 들판, 알록달록 갈색 갖춘 콩잎밭 들까지, 한 폭의 한국화가 따로 없었답니다. 제가 조금만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었더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풍경이였지요. 고속도로라 갓길 주차가 위험하여 사진도 못 찍었던 것이 조금 후회되네요...     


요즘 한강작가 물결이 광주 5.18역사로까지 밀려와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 등만 보아도 광주사람들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김호석 화백의 전시회 주제는 ’무등의 묵, 검은 울음‘이라고 하고요, 2024년 신작을 중심으로 민주, 민권,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되물음 해보자 라는 주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한강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고 문재학 학생을 그린 그림과 함께 5.18의 비극을 철저한 사실성과 철학적 비유을 통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해설지를 읽었습니다. 제가 비록 그림을 볼 줄도 모르고 그릴 줄은 더욱 못하지만, 그림에서 전해져오는 사실적 감정만은 느낄 수 있겠다 믿었습니다. 또 한강작가의 글과 김호석 화백 그림과의 공통성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서 일부러 전시장에 갔었습니다.     


이 편지글에 제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으니, 두 예술가들이 말하고자 한 부분의 일말이라도 공감하고 돌아와서 맘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역시 모르면 알고자 하는 맘을 먼저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혹시라도 광주와 가까이 계신다면 꼭 이 전시회(전남대학교 용지관 전시실, 10.24일까지)에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림을 보시면 우리가 왜 비극의 역사를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지, 왜 타인의 슬픔에 쉽게 작별하면 안 되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길>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참고> 호석 화백의 작품은 총 29점 전시, 모두 대형전시물이구요... 사진 촬영이 허락되었습니다

한강소설의 주인공 고 문재학 학생 옆에 놓여진 단팥빵
제목 <무등> - 저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연비어약'을 떠올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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