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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Oct 27.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192

2024.10.27 전재복 <허기>

이별 중 가장 슬픈 이별, ‘별세’한 김수미배우를 기억하는 추모마당이 말랭이 마을에 차려져서 헌화 후 방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랫동안 티브화면에서 만났던 사람이라 그런지, 정말 마을 어머님들 뵙듯이 친근했습니다. 곧 이어 타지에서 온 방문객 두명이 헌화를 하러 들어왔지요. 마치 제가 상주도 아닌데, 그들의 방문이 고맙더라고요.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오전에는 주변에서 행사하는 다른 곳들이 많아서 정작 마을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적었는데요, 오후가 되니, 각 부스에서 입주작가들이 바쁨신호를 보내더군요. 책방활동코너에서도 친구덕분에 시와 그림을 그리는 판넬체험이 잘 진행되었구요, 윗 책방에서는 귀한 분들이 다녀가면서 책도 골고루 선택, 왔다리 갔다리, 오르내렸더니, 하루가 저물더군요.     


책방에 오는 젊은 방문객들 왈, ‘여기는 한강책이 있어. 당근마켓에서 웃돈을 얹혀 파는데...’라는 말을 듣고 좀 웃겼습니다. ‘그런일도 있구나’싶었서요.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책을 사지는 않았지만요. 읽어보지 않고 한강 책은 어려워 라고 말하더군요...^^ 날씨가 좀 더워서 제가 드리는 음료 한잔에 쉬었다 가는 모습도 좋았지요.      


저녁식사를 좀 특별한 곳으로 초대받았는데요. 군산과 서천(장항)을 잇는 동백대교 아래,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낫시꾼들이 터를 잡는 곳, 전팡판 야경으로 군산이 멋지게 보이는 곳에 캠프파이어를 펼치고, 먹거리를 손수 다 준비한 남편지인들의 초대였지요. 빈손으로 가기 미안해서, 또 제게 한강작가의 <흰>이라는 작품을 처음 건네준 지인이 계시길래, 저도 시집<시발>을 준비했어요. 혹시나 형편이 된다면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시낭독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면서요.     


‘정말 잘했군 잘했어’을 연발할 만큼,,, 아니 남자들의 감수성이 그렇게 촉촉할 수가 있을까요.술한잔 살짝 들어가서 용기가 급 상승 한건지 한분도 주저하지 않았어요. 시집 제목에 한 마디씩 하시며, 휴대하는 마이크까지 꺼내어 들고 낭독시를 고르는 그들. 제가 작가의 마음이 되어 그들을 바라보니, 이 독자들과의 만남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싶었어요. 선택한 시들을 낭독하는 모습도 영상으로 찍고, 그들의 소감도 듣고요.    

  

그 중 한분께서는 바로 얼마전 그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신기하게도 <허기>라는 시를 선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허기를 느끼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마침 이 시가 내게 왔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행복한 만남이란, 이렇게 시인과 독자가 한몸이 될 때 느끼는 감정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저는 조금 일찍 자리를 떴지만 이 남자분들이 시집을 들고 시론을 나누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이 보다 더 한 기쁨은 없으리...모두 고맙습니다. 전재복 시인의 <허기>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허기 전재복     


왜 밥 안 줘?

세끼 잘 드시고

푸짐하게 내놓으셨다는 노모는

낯익은 아들의 목소리에

제일 먼저 배고프다 이른다

밥 안 먹었다고     


아들의 밥을 걱정하던

어머니는 지금 부재중

먼 먼 생의 뒤안길을

더듬고 계시다    

 

구십몇 해를 지탱한 뼈마디는

육신의 무게가 버거워

파업 중인데

속없는 밥통

채우지 못한 무엇이

아직도 고픈가 보다        

  

머지않은 저기 어디쯤

신기루로 뜨는 슬픔이

나는 아닐 거라고

애써 도리질 치다

넘치는 눈물 강에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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