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5
시 쓰는 주영헌 시인의 글과 필체가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발이 되어 먼길 걸어가는 외발입니다"
올해 시작한 매일 시 필사, 6개월이 지났지요.
어느덧 저는 188번째의 시를 필사합니다.
한 시인의 작품을 모두 필사 하기 보다는 여러 시인의 시가 모아진 시모음집을 먼저 읽게 되었지요.
시를 볼 줄 아는 지식도 없고 지혜도 부족해서 유명한 시인들이 권하는 작품들을 먼저 읽고 쓰고 있습니다.
김용택시인, 안도현 시인, 나태주시인, 정진아시인 등의 모음집이 바로 그들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알고 있었던 시도 있지만 전혀 뜻밖의 시들이 주는 필사의 즐거움은 상상 이외로 일상을 부자로 만들어줍니다.
얼마전 블로그 이웃으로 주영헌 시인의 신작 시집을 보았지요.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문구에, 시집 받고 싶은 욕심이 발동해서 바로 신청 했습니다.
정중한 화답과 함께 시집을 보내주셨네요.
<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시집의 커버는 젊은 대학시절의 어느 가을날의 기억을 소환 시켰습니다.
제 나이 60을 코 앞에 두고 20대 초년의 나와 당신을 떠오르게 하는 건 오직 '시'아니면 안될 일 입니다.
첫 페이지를 여느 다음 말이 저를 설레게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발이되어
먼길 걸어가는 외발입니다
시쓰는 주영헌 드림
12월 1일부터 새로 시작한 일상과제 중 하나가 감사글귀 3종쓰기 입니다.
벌써 5일째네요. 그러니 그 동안 15번의 감사글을 썼을거예요.
오늘 아침엔 눈을 뜨고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보았습니다.
조용히 남편의 숨소리도 듣고, 남편의 눈꺼풀도 보았습니다.
아마도 내가 보는 것을 아는 듯 하여, 얼른 아침 뉴스를 틀었습니다.
왠지 무안해서요~~
그러면서 혼자서 생각했지요.
주영헌 시인이 써준 바로 이 글을.
<먼길 걸어가는 외발 >
나이들수록 나의 외발이 더 무겁고 외로워져서 다른 외발을 찾는 수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써있는 시의 전문을 들려드릴께요.
반대쪽 - 주영헌
당신이 나의 왼쪽에 있을 때
나는 당신의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내가 오른쪽을 바라볼 때
당신은 왼쪽을 바라봅니다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려는 시소처럼
우리는 서로의 다른 편 이었습니까
당신의 싸늘한 두 손과
차가운 한숨
쓸쓸하게만 보였던 뒷모습까지도
우리에겐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발이 되어
먼 길 걸어가는 외발입니다
다음 시는 남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나의 건망증의 치료약은 바로 당신이어야 된다고도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지 좋아하네요.
당신이 필요한 날-주영헌
목욕버튼을 눌렀습니다
전화를 받다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잊어버렸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어서
익숙한 서랍만 뒤적거렸습니다
찌개를 태우다가
샤워하려고 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냄비가 속처럼 타버렸습니다
속상해서,
위로받으려고
전화기를 손에 들고 한참을 찾았습니다
당신이 필요한 날입니다
어쩌면 얼마전 저의 모습과 똑 같을까요.
남편이 말했었지요. "뇌질환으로 쓰러진 내가 당신 때문에 먼저 누울 수가 없네."
사실,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슬펐습니다. 눈물이 욱 하니 올라와서 뒤돌아 버렸지요.
시인의 작품 속에는 총 51편의 아름다운 시가 들어 있습니다.
부부든 연인이든 꼭 둘이라면 더 마음에 와 닿을 것입니다.
아니 둘이 아니라도 시인의 글과 사랑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인은 말해줍니다.
끊임없이 해변을 두드리는 바다처럼
보석 같은 '시' 들이 당신을 안아보려고 다가올 거라고.
첫눈 내리는 날
따뜻한 붕어 한마리가 손바닥 속에서 펄떡거릴거라고.
슬픔도 잘 세탁하여
건조기에 넣어말릴 수 있다고.
다시 사랑할 준비를 할 수 있다고...
2020 코로나가 우리를 얼게 했을지라도
다시 따뜻해질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순간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