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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an 03. 2021

읽고 쓴다는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 고미숙

2020.12.31

<글의 거룩함과 통쾌함이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다>

필사반 지인들에게 이 책을 쓰겠노라고 소개한지 만 3개월이 되었다. 이  해가 가기전에 꼭 마무리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도, 이차저차하니 시간은 야속하게도 내곁에 머물지 않았다.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의 독서태도는 처음부터 달리 설정했기 때문에 더더욱 느리게 읽혀진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그 대답으로 글쓰기 관련 책들을 구입하고 읽어댔다.

 그 중 강원국작가, 은유작가, 김민식 작가의 글쓰기 책들은 실제 글을 쓰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특히 매일 매일 글쓰기의 습관이 가져오는 변화와 가벼운 메모의 누적이 불러일으키는 효과 등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읽기, 글쓰기의 본성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또 그 본성은 어떤 형태로 발전되어왔는가에 대한 원초적이면서 심리적인 질문이 뒤따라다녔다. 

어느날 우연히 EBS 마스터 클래스에서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의를 들으면서 "아, 바로 저 말이다. 밥벌이로서의 글쓰기가 거룩함과 통쾌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박사학위를 하고도 교수사회에 들어가지 못한 작가가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하여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했다. 그후  박사, 교수보다 더 재밌는 삶의 철학을 알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바로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를 신청했다.

1. 산다는 것 - 안다는 것(p.24)

'산다'는 것은 '선다'는 뜻이구나. 두 발로 서는 데서부터 삶이 시작된다. 의학적으로 살펴보면 직립에 필요한 척추를 '럼버커브'라고 하는데, 이건 태아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나오는게 아니라고 한다. 후천적으로 터득하는 능력이란다.

 직립과 함께 손이 해방된다. 손이 땅에서 하늘로! 손이 하는일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하늘과 땅, 머리와 다리 사이를 연결하는 중재자이자 내비게이션이기 때문이다. 이게 인간의 현존성이다.  누구의 명령에 따라 일하고 싶지 않다. 그런 길이 딱 하나, 바로 글쓰기 였다. 글쓰기 보다 더 확실한 '럼버커브'는 없다.

2. 안다는 것 - 읽고 쓴다는 것(p.44)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하늘은 텅 비어 있지만 변화무쌍하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낳고 또 낳을수 있다. 이것을 하늘의 무늬 '천문'이라 한다. 몸을 굽혀 땅을 보라. 땅은 조밀하고 구체적이며 견고하다. 만물을 두루 포용할 수 있다. 이것을 '지리'라고 한다. 천문과 지리 그 사이에서 인사가 결정된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열쇠가 있다. 

플라톤은 하늘 속에 담긴 땅의 모습을 보았고, 땅위에 펼쳐진 하늘의 원리를 읽었다. 이것이 바로 '안다'는 것의 본질이다. 이 앎과 함께 인간의 길이 시작된다. 인생이란 길 위에서 '길'찾기다. 길을 찾으려면 지도가 있어야 한다. 앎이 지도이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알아야 한다. 

'읽기와 쓰기'가 준칙이다.

3. 쓰기위해서 읽어라(p.63)

우주는 거대한 도서관이다. 하늘은 책이다. 무량겁의 텍스트가 거기 있다. 읽고 읽어도 늘 새롭다. 매일 아침 하늘은 새로운 세상을 연다. 인간이 두 좃발로 선 이상 이 변화무쌍하고 흥미진진한 '책'을 어찌 외면 할 수 있으랴.

 천지라는 이 우주적 도서관에 일단 발을 들려놓은 이상읽지 않을 수 없다. 고로 삶은 읽기다! 살아 잇는 한 읽어야 한다. 사람 또한 책이다. 사람은  그 자체로 스토리요 텍스트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상, 인생이라는 책에 접속하는 것이다.

4. 읽기와 쓰기,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p.66)

- 하늘 아래 책을 읽고 이치를 연구한 것 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첫째로 경전을 연구하고 옛날의 진리를 배워서 성인이 펼쳐놓은 깊고도 미묘한 비밀을 들여다본다. 

둘째로 널리 인용하고 밝게 분별하여 천년의 긴 세월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시원스레 해결한다. 

셋째로 호방하고 힘찬 문장 솜씨로 지혜롭고 빼어난 글을 써내어 작가들의 동산에서 거닐고 조화의 오묘한 비밀을 캐낸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사이의 세 가지 통쾌한 일이다. 

(안대회, 정조치세어록) -

정조는 조선의 지존이다. 그럼에도 그의 삶에서 가장 거룩하고 통쾌한 일은 배움, 곧 읽고 쓰기였다. 조선의 18세기를 르네상스로 장식 할 수 있었떤 원동력은 그 어떤 통치술이나 정치공학이 아닌, 끊없이 읽고 쓰는데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선물을 이렇게 변주했다. '읽는다는 것의 거룩함과 쓴다는 것의 통쾌함'으로.

5. 공자와 붓다의 지복을 누리고 싶다면? 읽어라!(p.96)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의 첫 장 <학이편>의 첫 구절이다. 거창한 의미에 비하면 문장은 너무 평이하다. 사람들이 그 심오하고 미묘한 실상을 알게 된다면 아마 자기도 모르게 "손이 춤추고 발이 춤추게" 될 것이다. 

6. 디지털 노마드 - 글쓰기는 미래다(p.171)

이전에 글쓰기는 정착민들의 것이었다. 크고 우아한 서재를 가진 자들, 지식을 잔뜩 짊어지고 잇는 자들, 천재성으로 무장하고 창백한 자의식으로 넘치는 이들의 몫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서재도 자의식도 필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은 스마트폰에 다 들어있다. 이게 바로 디지컬 노마드다. 노트북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쓸 수 있다. 이 또한 기적이다. 글쓰기는 오래된 양식이다. 그러나 기교나 테크닉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미래다. '오래된 미래로서의 글쓰기! 

그러니 부디 알려고 하라! 부디 쓰려고 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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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31일, 2020의 마지막 날, 무언가를 꼭 정하고 싶었다. 새벽에 눈을 떠, 오늘의 일정표를 확인하고, 지인들과 약속한 아침인사를 했다. 굿모님을 위해 '아침에 들으면 좋은 클래식' 유투브 동영상을 켰다. 그때 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바로 <당근마켓>앱에서 울렸다. 이 새벽에 누가 이렇게 부지런 할꼬 하여 손가락을 틱틱거렸다. 왠걸, 원목으로 된 좌탁이 보였다. 가로 100cm, 세로 55cm. 

'어? 내 침대 옆에 놓면 딱 좋은 사이즈네.'

나야말로 새벽인지 아침인지 구별도 못하고 실례의 문자를 보냈다.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보고 사셔야죠."

딸과 함께 이웃의 아파트로 가니, 웃음 가득지으며 아주머니가 환대해주셨다. 

"제가 원목에 한참 빠져서 이것 저것 샀더니 집이 난리예요. 살림살이를 줄여보려구요. 통유리도 있어서 깔끔해요." 

그 자리에서 3만원을 드리고 잽싸게 가지고 가겠다고 하니, 부부의 손발이 바빠졌다. 

내 차량에까지 가져다 주겠다고. 잘 쓰시라고. 당근 마켓 말 그대로 '당신 근처에' 마켓의 장점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침대 옆에 좌탁을 놓으니  모양새가 정말 보기 좋았다. 올해 오마이뉴스 기고로 적립된 원고료로 산 노트북을 놓았다. 딸이 가져다 준 커피향, 남편이 설치해준 램프등과 탭북이 더할 수 없는 장식품이 되어주었다. 

'엄마 글쓰기 공간 만들기'

새해에는 읽고 쓰기의 거룩함과 통쾌함이 일상이 되고 소확행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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