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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an 21. 2021

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박지웅

2021.1.20

산책을 가면서 단 한번도 ‘산 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우둔함이 밀려왔다.

‘산책이 산 책이다. 세상이야말로 생생한 책이니 산책이란 온몸으로 하는 독서가 아닌가’라는 작가의 첫 페이지를 만나는 순간 “오호라, 이 책이다. 글 산책하기 딱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걷는 산책도 좋지만 마음 산책을 권하는 작가의 말에 따라, 책도 읽고, 손편지도 쓰는 지난 며칠을 보냈다. “내가 부친 그리움은 며칠 후에나 그대에게 가 안길까.”라는 시인의 <편지>라는 시를 읽으며 지난 며칠 나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썼다.


<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테니>는 시인인 박지웅씨의 첫 산문집이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정호승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같은 수필이라고 시인이 쓰는 일상의 글은 ‘유독 따뜻함과 다정함이 겨울잠을 깨우는 깊고도 날카로운 햇살은 저리 가라.’ 하네라고 생각한다. 이 산문집 역시 그러했다. 아직도 동전으로 공중전화부스를 찾는 작가의 클래식이 보여주었다. 그의 감성은 코로나로 더 다급해진 디지털문화의 주변머리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의 혼란에 촉촉하고도 그윽하게 스며들어 봄을 깨우는 겨울 눈물과 같았다.


당신은 다섯 손가락에 꼽은 단어들을 말해줄수 있으세요? 책을 읽던 도중, 지인들에게 물었다. 어떤 이는 ‘나,사랑,행복,돈,내새끼’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기도,가족,지혜,건강,나눔’이라고 했다. 엉겹결에 나도 ‘내 자식, 행복, 엄마, 지식, 나눔’이라고 말하고 나니, 왠지 정말? 이라는 물음표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닌가바...라고 고개를 숙였다. 시인 역시 모 학교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단다. 


- 아이들의 한숨 소리 후에 나온 단어들 중 으뜸은 ‘어머니’였다. ‘시’를 최후의 단어로 꼽은 친구는 시인으로 살아갈 거라고. 위 모두가 최후로 남긴 단어를 가슴에 품고 꿈꾸며 뜻깊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갈 거라고. 이 생명어들이 가슴에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삶이다. -

(P.22, ‘다섯손가락에 꼽은 단어들‘ 중에서)


해마다 첫 마음을 새해 첫 날에 심어 놓고 그 마음을 지탱하기 어려운 줄도 모르고 하루가 간다, 때로는 마음의 무게중심이 제대로 서 있는지 확인도 하고 다시 곧추 세우고 하는 노고를 가져야 할텐데, 아무 생각없이 첫 마음을 보내버린다. ‘첫’ 마음이 언제나 처음처럼 되기를 의식하고 노력해야겠다고 오늘도 첫 술 뜬 그 자리를 들춰 보았다.


 - 우리 삶에 중요한 방향타 ’첫‘이란 단어는 단순한 관형사가 아니다. 첫 차를 타고 첫 출근하던 날, 첫눈에 빠져버린 첫사랑에 띄우는 첫 편지에 수업디 썼다가 지운 첫 줄, 파란철 대문 우체통에 꽂혀있던 애인의 첫 편지를 꺼내던 첫 떨림, 새해 첫날 마당에 소복이 내린 첫눈에 첫발자국을 찍던 아침은 얼마나 신났던가.-

(P.41, ’첫 이라는 단추 꿰기’ 중에서)


여느 해와 달리 유독 겨울이 겨울답다. 큰 함박눈이 몇 차례 쏟아져서 차를 움직일 수 없었다. 살짝 내 딛은 발자국 밑에서 나오는 뾰루퉁하니 뿌지직한 소리들이 얼마나 발바닥을 간지럽히던지 새삼 어릴 적 동심이 떠올라 눈 밟는 즐거움이 좋았다. 시인도 아니면서 절로 시상이 떠오르면서, 예쁜 말들이 넘실거렸다. 흰 눈이야말로 내가 빌려 쓸 수 있는 차명재산이었다. 갑자기 재산이 많아지니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났다. 흰 눈이 담긴 호수와 노니는 물닭들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에 맞는 짧은 글도 써서 매일 일기에 저장했다.


- 세상은 전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꽃으로 돌아간다. 봄이 곳간을 열자 벚꽃이 다발로 쏟아진다. 벚나무는 남의 집 마당에 숨겨둔 시인들의 차명재산이다. 아무리 없는 시인이라도 이때만큼은 돈푼깨나 있는 티를 낸다. 나라 법과는 달리 이 부동산은 드러날수록 흐뭇한 사태. -

(P.58, ‘우리는 꽃과 나비를 꾸러왔다’ 중에서)


 아침마다 살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복실이와 굿모닝을 한다. 그 녀석이 들어와서 욕실에서 물도 먹고 볼일도 보라고 침실문은 늘 개방이다. 10년차 가족으로 복실이와 살고 있다. 주인 식구들에게 적응하는 건지, 병원 신세 한번 지지 않고 살았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유선에 작은 혹이 생겼다. 그때부터 녀석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랑 똑같다고 말한다. 이제는 복실이가 딸과 같아진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때도 가만히 옆에 있는다. 내 말을 주의 깊게 살피는 그 눈과 마주치면 죄책감이 생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새해를 맞았다. 


- 고양이는 꿈을 많이꾸는 동물이다. 잠결에서 깨어난 새벽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어린 침묵조차 다정하다. 세상의 모든 눈은 별이다. 그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별. 어린 왕자가 장미를 심고 가꾸던 작고 아름다운 별처럼. 내게 있어 시와 고양이가 삶의 바닥과 곁이듯, 저마다 삶과 꿈을 지지하고 지탱하는 곁과 바닥은 다르다. 곁과 바닥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P.156, ‘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 중에서)


분명 어젯 밤에도 기다렸다. 매일 약속한 하루의 루틴을 행하려는 내 정신과 움직임을. 의무적인 기다림 일지라도 그건 어쩌면 내가 살아있다는 뚜렷한 증거이므로 즐거운 새날을 기다리며 잠을 청한다. 나의 기다림은 투명하기 이를 데 없다. 때론 반 투명지 비닐을 덧대어볼까를 생각하지만, 이내 거추장스런 행위임을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이 삶이다.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렸고, 무언가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인내만이 가장 달콤한 열매를 가져온다고 말하고 들어왔다. 반백이 넘은 지금에도 그 말이 진실임을 안다.


기다림의 내용과 형식은 다양하다. 어떤 기다림을 은밀하고 밀접하게 삶에 결속되어 있어 사람들은 그것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어떤 기다림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극한으로 몰아가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란 리본이 묶여 있는 팽목항이 그렇다. 삶의 공간은 곧 기다림의 공간이며, 삶의 시간도 곧 기다림의 시간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기다림으로써 진화해왔고, 그 행위로 존재했다. 기다림이 오면 물러서지 않으리라. 내 삶이 잠깐 머물다 비워둔 그 수많은 기다림의 방들을 다 방문해보리라.

(P. 196, ‘기다림에 빈방이 생기면’ 중에서)


박지웅 시인의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視線)이 이내 눈을 뗄 수 없는 시선(詩選)으로 나왔다. 

지난 며칠 나의 시선도 그의 글 속에서 시인처럼 눈 굴리며 세상을 보았다.


<나비매듭> 박지웅


길 한편에 치워진 고양이

꽃을 보고 누워있다

한번도 꽃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꽃이 고개를 돌린다. 

쓰레기나 뒤지더니 쓰레기처럼 죽어가는

놈의 따뜻한 기억은 대부분 길에서 주운 것이다

길에서 피었다 사라지는 것들

꽃도 머지않아 이 길에 뼈를 묻을 것이다

북아현동에 첫 추위가 찾아왔다

검은 비닐 챙겨 골목길을 내려간다

신문지로 고양이를 싼다

우그러지며 수의가 우는 소리를 낸다

검은 비닐에 넣고 나비매듭을 한다

고양이와 꽃과 나는 쓰레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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