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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an 30. 2021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2021.1.30


“죽을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는다면 행복할 것” 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2021년 1월 22일은 작가의 추모 10주기를 맞았다. 많은 언론에서 작가의 업적을 평하고, 유명 출판사에서는 작가의 작품 중 주옥같은 글을 모아 다시 책을 펴냈다. 그 중의 하나가 <모래알 만한 진실이라도 – 세계사 출판>이다. 출판사는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 박완서, 그가 남긴 산문 660여 편 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 35”라는 타이틀을 걸었다.    


에세이를 쓰면서 닮고 싶은 작가의 글 중에 박완서의 작품이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어떤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산다. 그들의 육신은 소임을 다하고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그들이 남긴 빛나는 정신과 문장은 계속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한국일보 1.22일)라는 말처럼 한 사람의 육신이 멸해도 그 정신과 가치가 오롯이 살아, 세대를 넘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탄할 일인가 싶다.  

  

이 산문집이 도착하니 대학생인 딸이 먼저 찜하고, 읽었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딸은 책 표지의 유화체 그림에서 따뜻함을 느낀다고 내용은 어떤지 궁금하다 했다. 글을 먼저 읽고 나서 박완서작가가 누구인지 스스로 찾아보라고도 했다. 삼일째 되던 날 딸은 다 읽었다며, 내게 건냈다.


아주 오래 전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는가> <자전거 도둑>을 읽은 후 작가의 다른 작품에는 다가가지 않는 소위 편식성 책 읽기때문에 부끄럽게도 박완서 작가의 글은 늘 멀리 있었다.  

  

- 나는 문학 지망생이었다기보다는 문학애호가 였다고나 할까. 신춘문예라는 것에 대해 알 만큼은 알고 있었는데, 단 한번도 응모해 본적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여성동아]의 공고란에 강하게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래 7월처럼 뜨거웠던 여름은 다시 없었던 것 같다. 40세에 별안간 불타오른 문학에의 정열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리송하다. 9월 초순 당선 통지를 받았다. 아이들이 굉장히 기뻐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정환경 조사서에 엄마 직업을 ‘무’가 아니라 ‘작가’라고 쓸 생각을 하면 막 신이 난다고 했다. 사실 그 말에 속으로 뜨끔했다. 내 애들 만큼도 장차 내가 소설가가 될 각오가 서 있지를 않았다. 당선을 전후한 시기의 내심의 혼란과 흥분을 완전히 가라앉았다. 내 내부에서는 새로운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당선작을 처녀작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조용히 사라져 가느냐, 당선이란 사실을 앞으로의 작가 생활로 이어질 발판으로 삼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

(P. 208 중년여인의 허기증 중에서)    


작가는 40살에 소설가로 등단, 그것도 전에 단 한번의 공모전 도전 이력도 없이, 소설<나목>으로, 세상에 나와서 81세에 세상과 이별했다. 작가로서 40여년 동안 많은 글을 남겼다. 50대 60대는 물론이고 40대 30대, 20대인 내 딸도 그의 이름은 알고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독자층이 있다.

그의 대중성은 근원은 무엇일까? 그의 딸 호원숙씨는 말했다.    


- 어머니의 글은 분명 여러 번 읽었을 터인데도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가족들에게 사랑의 입김을 불어 넣어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얼마나 간절이 바랬는지, 젊은이들이 자유롭고 미래를 펼쳐가길 얼마나 기원했는지, 하찮은 것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진실을 알려주려고 얼마나 소심했는지, 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에 얼마나 절절하게 마음이 벅찼는지.-


가족, 미래, 젊은이, 진실, 기쁨, 아름다움에 대한 절절함은 그 누구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기에 작가의 글은 시대도 초월하고 세대도 넘어서는 것이다.   

작가로서 시작하면서 ‘재능부족’이란 말로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말한 것은 초보 글쟁이에게 더없이 단단한 회초리 같고 밝은 거울이 된다.    


-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처럼 열심히 라는 것 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하길, 정직하길, 조금만 진실이라도, 모래알 만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 라는 것만으로 재능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될까 말까 하던 4년전의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다. -

(P. 208 중년여인의 허기증 중에서)    


책으로 읽지 않았지만, 얼마 전 유시민의 유투브방송, 독서평론에서 듣게 된 <엄마의 말뚝>에서 나왔던 글의 일부 내용들이 이 산문집에도 있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자전적이야기라고 한다. 한 시간여 동안 방송을 듣는 것만으로는 내용에 목말라 바로 책을 주문했다. 다만, 작가의 어머니가 한국전쟁 때 겪은 아들의 죽음, 또 작가가 겪은 아들의 죽음을 읽으면서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아픔이 전해왔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참을 눈을 감고 가슴에 책을 대고 머물렀다.

     

'서울대를 중도포기했지만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남 4녀의 자식들이 모두 유명대학에 갔다,  작가로서 평생을 유명인으로 살았다' 등 작가의 현실적 배경 뒤에 있었던 작가의 굴곡진 슬픔을 한 줌이라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슬픔을 끊임없이 글로 토해내면서 작가는 하늘이 내린 고통스런 삶을 스스로 치유했던 것 같다.

     

-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 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 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두고 싶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고 싶다.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 오는 사람으로서도 아니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도 아니고, 그냥 남자로서 사랑하고 싶다. 태초의 남녀 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

(P. 282 그때가 가을 이었으면 중에서)    


작가는 세상과의 이별 앞에서 선다면 주변의 아주 사소한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의 대표 사진에 자주 오르는 ‘해맑은 미소를 가진 소녀’가 간직한 그 마음 그대로 일 것이다.

2월은 내 자신에게 박완서작가의 작품들을 통독하는 시간을 허락해야겠다.

       

박완서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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