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1 박형준 <나는 달을 믿는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저만리’ 라고 노래, 기러기떼의 아침인사 소리가 노래처럼 다가왔다 사라지네요. 요즘 매일 만나는 첫 번째 겨울친구들입니다. 오늘따라 기러기들 울음소리에 색깔이 입혀지는 것은 아마도 어젯밤 나눴던 ‘시 줌강독’덕분인 것 같아요. 올해 한달에 한번씩 진행하며 어제밤이 올해 마지막 시간으로 박형준시인의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을 강독했어요. 어제도 5시간을 돌파하는 열정맨들 사이에서 저도 행복한 시간이었네요.
제가 읽은 시의 한 구절 – 외로움에도 색채가 있다면/나무에 달라붙어 밤을 견딘 나비의 외로움은/ 아침에 어떤 색깔이 되었을까 /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외로움의 색채가/ 다르게 나타난다는데/ 내 외로움의 색채는 –을 읽으면서 저는 기러들의 외로움을 생각했답니다. 또 저의 외로움의 존재와 그가 지닌 색깔은 어떤 빛일까를 처음으로 생각했죠.
시(글)를 읽는 행위는 눈동자 돌리는 기능에 머물지 않고, 나를 벗어나는 모든 존재, 심지어 저도 모르는 제 안의 마음존재에 이르기까지, ‘나와 상대‘를 서로 바꿔보는 능동적 행위가 따라와야 제 맛을 느낄수 있는 것 같아요. 박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의 언어에 공감수치가 높았던 것은 아마도 그런 교환법을 시를 통해 알려주었기 때문일겁니다. 내년에도 지속되는 프로그램이니, 혹시나 관심있으시면 제가 ’인문학당‘참여에 중매역할 해드릴께요.^^
오늘은 시낭송 지인들과 함께 가까운 송년여행을 가는데요. 오랜만에 제 고향, 위도로 가는 길목에 가서 겨울바다의 색깔을 담고 오겠습니다. 교통접속사고시 현장에서 울리던 마찰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고, 핸드폰 눌렀던 떨리던 손이 아직도 여진이 남아, 아무곳도 가기 싫었는데요, 남편의 조언대로, 남의 차 속에서 가볍게 수다떨며 훌훌 털어버리라는 말이 싫지는 않아서 움직입니다. 재차 운전할때는 눈이 오는 것이 가장 괴로웠는데, 남의 차를 타려하니 한순간에 ’눈이 오면 좋겠다’로 바꿔지는 이 심성이야말로 이기적인 인간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미안하네요.^^ 박형준시인의 <나는 달을 믿는다> 읽으시면서 어릴적 놀았던, 달나라 토끼 생각하시며, 그곳에 내가 걸을 수 있는 골목에 서서 시집 한권 들고있는 당신의 모습 그려보시는 편안한 주말...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나는 달을 믿는다 – 박형준
달에 골목을 낼 수 있다면 이렇게 하리,
서로 어깨를 비벼야만 통과할 수 있는 골목
그런 골목이 산동네를 이루고
높지만 낮은 집들이 흐린 삼십촉 백열등이 켜진
창을 가진 달
나는 골목의 계단을 올라가며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며 울리라,
판잣집을 시루떡처럼 쌓아올린 골목의 이 집 저 집마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불빛 모아
주머니에 추억 같은 시를 넣고 다니리라,
저녁이 이슥해지면 달의 골목 어느 집으로 들어가
창턱에 떠오르는 지구를 내려다보며,
한권의 시집을 지구에 떨어뜨리리라,
달에는 아직 살 만한 사람들이 산다고
나를 냉대했던 지구에
또다시 밝아오는 아침을 바라보며 오늘도 안녕
그렇게 안부 인사를 하리라,
당신이 달을 올려다보며 눈물지을 때
혹은 꿈꾸거나 기쁠 때
달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화구들이 생겨나지,
우리가 올려다본 달 속에 얼마나 많은 거짓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는지
그 거짓과 슬픔 속에서 속고 속이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던 것인지
나는 달의 분화구마다 골목을 내고 허름한 곳에서 가장 높은
판잣집의 저녁 창마다 떠오르는 삼십촉 흐린 불빛으로
지구를 내려다보며 울리라,
명절날,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 집 툇마루에서
저 식지 않을 투명한 불꽃을 머금고
하늘 기슭에 떠오른 창문을 바라본다
그렇게 달의 먼지 낀 창문을 열면
환한 호숫가에 모여 있는 시루떡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