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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Dec 22.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248

2024.12.22 신석정 <빙하>

바위방석이 물에 넘실거릴때까지 바다만 바라보던 스무살 아가씨. 저멀리 해안경비 군인아저씨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지 않았더라면... 이미 주변은 밀물로 가득차서, 제가 건너온 바위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었죠. 소위 죽었다 살아났었답니다. 그 옛날 엄마가 처음으로 샀던 카메라를 몰래 들고 나갔다가 눈앞에서 벌어진 사경(死境)에 내 팽개쳤지요. 지금도 무릎 정강이에 남은 상처 흔적들을 볼때마다 그때 그시절 이야기가 절로 나옵니다.     


부안 채석강을 보러 갔다가 일어난 제 젊은 청춘스토리... 웃음이 나오지만,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저는 조숙하다는 말을 듣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는데요, 대학에 가자마자 고향섬이 보이는 격포 앞바다 채석강에 가서 무슨 놈의 생각을 바다를 보면서 해야했는지,,, 하여튼 그런시절이 있었답니다.^^  

   

송년을 맞이하는 수많은 이벤트들이 즐비한 세모(歲暮)에, 시낭송전문가 선생님들과 함께한 송년여행은 오래토록 기억에 남겠습니다. 다름아닌 채석강으로의 여행이었거든요. 고향섬 위도를 가려면 채석강을 볼 수 밖에 없어서 자주 찾는 관광명소이지만, 누구와 가는 여행이냐에 따라 그 빛과 색깔이 다르니, 생전 처음 본듯한 환희는 밀려오는 파도의 능선을 넘어 수많은 포말을 만들고 겨울바다의 진수를 제대로 느끼고 돌아왔지요.  

   

아시다시피 채석강의 모습은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합니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슷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라고 하지요. 하지만 수만년동안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의 형상은 아마도 인간세상을 바라보며 깊은 철학적 고뇌를 하느라 새겨진 세월의 주름같이 보입니다. 또 어쩌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철학의 사유를 하고 싶다면 ‘채석강으로 와서 내 책 한권 빌려줄테니 읽어보시오’라는 속내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임금상 수라상 같은 황홀한 점심과 저녁만찬, 부안의 절경과 어우러진 미술전시관(휘목미술관)에서의 차담, 부안의 거장시인 신석정시인을 다시 만나게 해준 부안 시낭송가님의 고즈늑한 공간에서의 시낭송시간. 적절하게 휘날리는 눈발로 앞산은 이내 흰머리를 두르는 풍경들... 참 고맙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나눌수 있는 것은 사진 뿐이니 더 추어지기 전에 부안 여행한번 떠나보세요. 갈 곳이 무궁천지인 부안에서 건강한 음식도 함께 드셔보시길 강추합니다. 신석정 시인의 <빙하>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빙하 – 신석정     


동백꽃이 떨어진다

빗속에 동백꽃이

시나브로 떨어진다


수水

평平

선線

너머로 꿈 많은 내 소년을 몰아가던

파도소리

파도소리 부서지는 해안에

동백꽃이 떨어진다


억만 년 지구와 주고받던

회화에도 태양은 지쳐

엷은 구름의 면사포面紗布를 썼는데

떠나자는 머언 뱃고동 소리와

뚝뚝 지는 동백꽃에도

뜨거운 눈물 지우던 나의 벅찬 청춘을

귀 대어 몇 번이고 소곤거려도

가고 오는 빛날 역사란

모두가 우리 상처 입은 옷자락을

갈갈이 스쳐갈 바람결이어

 

생활이 주고 간 화상火傷쯤이야

아예 서럽진 않아도

치밀어오는 뜨거운 가슴도 식고

한 가닥 남은 청춘마저 떠난다면

동백꽃 지듯 소리 없이 떠난다면

차라리 심장도 빙하氷河되어

남은 피 한 천년 녹아

철 철 철 흘리고 싶다               


2024송년 여행의 진수를 추억으로 간직 할수 있도록 도와주신 한국시낭송예술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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