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3 이기철 <저녁거리에서 생을 만나다>
‘작은 것들에 대한 감수성’이 깨어있는 세상을 주장하는 한 신부님과 철학자의 강연을 들었죠. 어떤 세상, 어떤 사회가 아름다운가에 대한 기준으로, 가장 작고 여린, 가장 보잘 것 없고 허약한, 그래서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대상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한달전 일어났던 미치광이 쿠테타,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보여준 사례도 처음이라지만, 그 주범이 변함없이 그대로 권좌까지 틀어쥐고 있는 행태를 지켜만보아야 하는 일도 처음이라는 뉴스. 매일 매일 어떤 소식이 올지, 걱정덩어리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제주항공 사고까지 연달아 이어져, 우리가 이 큰 어려움을 겪어내려면, 방향설정에 다소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숨쉴수 있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새 햇빛을 마주하고, 새 바람을 느끼는, 새 세상의 창문을 함께 열수 있으려면 장거리 호흡이 중요한 시점. 그 단서를 ‘작은 것들에게 공감하는 일’로 세워봅니다. 아주 작은 일에게 천천히, 부드럽게, 비슷한 모습으로 다가서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그러면 저절로 내 생의 하루라는 시간도 길어질것이고, 1월이라는 한달도 늘어나고,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차곡차곡 쌓여있을 시간의 여백을 그려봅니다.
책방에도 저 혼자만의 시무식을 했던 어제. 1월 일정표에 써 있는 이런저런 계획들을 보면서 한 줄 더 써두었지요. ‘이토록 작은 곳에서 펼쳐질 아름다운 세상, 봄날의 산책 2025’
지난해까지 책방을 찾았던 손님들의 이름들을 보면서, 어떤 이에게는 짧은 인사문구도 보내고, 또 다른 이에게는 희망도서대출건 소개도 했지요. 또 일년동안 아무도 열어보지 않아 그대로 누워있는 시집 몇 권을 후루룩 넘겨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을까 검색하며 책을 주문하기도 하고요. 나름 소소한 책방 일을 하는 직원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분명 더 좋은 일이 있을거야’를 기도하며, 이기철 시인의 <저녁거리에서 생을 만나다>를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저녁 거리에서 생을 만나다 - 이기철
문 닫는 상점들의 저녁 거리에서 남은 하루를 만난다
춥지 않으려고 나무들은 어둠을 끌어다 제 발등을 덮고
불만 없는 개들은 제 털이 어둠 속에 쉬이 따뜻해지리라는 것을 안다
난폭한 철근들이 잠드는 일은 나를 두렵게 한다
철든 나무들이 어두워진 도시를 달래고
팔려가지 않은 시금치와 조잘대던 완구들이 침묵한다
저 첨탑들은 얼마나 우둔한가
어리석게도 우리는 거기서 생의 열망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쉽게 지워지는 종이의 약속
거기서 우리는 생이 꽃피리라 믿었다
사람들은 천천히 휴식의 빵을 뜯고
어린 옷가게들은 왜 도시가 어두워지는지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한다
모든 식사들은 활발하고
부엌과 식당에는 늙은 식욕이 혼자 않아 있다
비탄 한 꾸러미씩 사 들고 가는 사람들
사무원들이 두들기던 자판의 하루가 쉬이 저물고
지나온 습관은 닳은 신발을 맹목이게 한다
어둠 속에 생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별을 쳐다보는
나와 함께 이 도시를 떠밀려 가는 사람들
그들의 내일이 환히 꽃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