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9 도종환 <폭설>
’흰빛은 오직 흰눈송이에서 발하는 것!‘ 이라는 듯, 온 세상이 하루아침에 흰 빛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작년보다 한달여간 겨울가뭄이었으니, 분명 축복의 눈이지만, 그냥 즐길수 없는 엄청난 많은 일들이 나라 안에 있어서 몰래 쌓아두고 서서히 물이되어 젖어들길 바랄수 밖에요.
어제 점심무렵까지는 바람한점 없이 힘차게 내려오는 눈이 만난 덕분에 사진보다도 제 눈속에 좋은 풍경 많이 담았습니다. 아무리 사진기 성능이 우수해도 사람의 눈보다 좋을 수 없으니까요. 설경에 당신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하는 어른들 두서분의 사진을 찍어드리고, 풍경사진을 잘 찍고 싶어하는 분에게는 왕초보가 아는체도 했습니다.^^
작년 한강작가의 작품을 만난 사람들은 아마도 흰색과 그 흰색속에서 어른거리는 검은색을 잘 보았을겁니다. 또 작년 쿠테타 이후 국민들, 그중 2030 청년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빛의 혁명속에서의 빛나는 흰색, 그와 달리 대조되는 우익화계층에서의 검은색 세상을 보고 있을겁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단지 두 가지 색만 보이는 세상에 살고 있는 듯,,, 어서빨리 이 지난한 터널을 지나가길 바랄뿐입니다.
저의 아침편지 중 2024편의 일부, 특히 좋아하는 시 중심으로 모은 편지글을 한권의 책으로 묶으니, 이제야 받아봅니다. 표지그림에 겨울 회색빛 처리를 부탁했습니다. 소장용으로 두고 싶어서 비매품발행, 단 2024.12.31.일 이라는 날짜를 등록하여 작년에도 모니카가 뭔가를 했구나 하는 흔적만 남겼습니다. 책 속에 나온 주인공 몇분들에게는 선물로 드릴까하네요.
요즘 논밭에 가면 겨울철새들이 아주 많지요. 사람은 그들을 풍경으로만 볼수 있지만, 그들은 생명을 지키기위해 수만리 길을 건너온것입니다. 인간이 남겨둔 낱알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한 알의 낱알이 얼마나 큰 태산처럼 느껴지는지. 마찬가지로 한 줄의 글을 한 권의 책속으로 모아두니, 마음과 배가 든든하니 참 좋습니다. 오로지 저만의 풍경을 담아둔 보물상자처럼 보여서 제가 쓴 글인데도 후루룩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논어구절 하나 들어보세요, 선리기기(先利基器) -장인이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공구부터 잘 다듬어 놓아야한다(위령공9장)입니다. 도종환시인의 <폭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폭설 – 도종환
때묻은 내 마음의 돌담과 바람뿐인
삶의 빈 벌판 쓸쓸한 가지를 분지를 듯
눈은 쌓였어요
길을 내려 나갔지오
누군가 이 길을 걸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내게 오는 길을 쓸러 나갔지요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먼지를 털고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내 가슴 속
빈방을 새로 닦기도 했어요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내 사랑 누군가에게 화살처럼 날아가 꽃히기보다는
소리없이 내려서 두텁게 쌓이는 눈과 같으리라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