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8 오정방 <함박눈>
밤새 설국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온 저는 깊은 잠까지 들었네요.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온다는 소리도 없이 찾아온 눈송이들을 그냥 보낼수 없어서 야심한 시각, 은파호수행. 바람 한점 불지 않은 덕분에 나무마다, 잔가지마다 고요히 내려앉아 수북해진 흰눈꽃송이를 터트리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어둠의 세상을 하얗게 밟혀주는 생명의 눈(雪) 빛으로 가득한 깊은 밤 설경이었습니다.
저는 천성이 물건하나도 오래씁니다. 남들이 말하길, 핸드폰도 1-2년 주기로 바꾸도록 설계되어 있다하지만, 그냥 익혀지는 대로 쓰다보면 몇 년을 쓰지요. 그래서 새 물건으로 바꾸는 데도 맘 먹고 실천하기가 또 1년 이상이 소요되요. 그러다가 어제 6년쯤 쓴 핸폰을 새것으로 바꿨지요. 사진을 찍다보니 용량이 너무 많이 차지하기도 하고, 또 사진의 화질에 욕심이 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자주 작동속도가 느려지고 그랬어요. 이러다 저장된 사진들도 다 날라가겠다 싶어서 결국은 새 물건이 제 손의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익숙해지는 것은 참 좋은 일. 사람도 물건도 익숙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력과 시간이 들여야 하는지요. 한번에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한번에 좋은 기능을 사용하게 하는 물건은 결코 없다라고 단언할만큼 ’단 한번에‘라는 말은 멀리두고 싶지요. 비록 느리고 버벅거릴지라도, 한번이 두 번되고, 두 번이 백번이 될지라도, 그냥 바보같이 꾸준히 응대하다보면 참 사람도 얻고 참 물건도 제 것이 되겠지요.
사진찍기에 최고라는 새 핸드폰으로 황홀한 설경 찍고 싶은데, 어느 풍경이 아름다울까 추천받고 싶군요. 동시에 사진마저도 안타까움과 슬픔을 자아내는 2030청년들의 천막탄핵집회과 영장발부가 다시 나와서 다시 또 같은 절차의 체포과정을 바라보아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도 떠오릅니다. 한순간이나마, 흰눈이 우리들 상처를 치유해주는 약이 되길 바래는 마음은 너무 이기적일까요.
오늘의 논어구절, 익자삼우(益者三友) - 저익, 성실, 견문 있는 자와 벗이 되어라.(계씨편 4장)
오정방시인의 <함박눈> 들려드려요. 봄날의산책 모니카.
함박눈 – 오정방
작약화 필 무렵이사 아직도 멀었는데
하늘에서 함박꽃 너울 너울 잘도 쏟아진다
지난 해 피었다 진 작약꽃들이
우리 몰래 하늘로 올라가서 월동을 하다가
일진을 잘못짚어 이 겨울에 함박눈으로 찾아오나
방안에서 내다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앞뜰로 뛰어나가 양팔 벌려 너를 반긴다
분명히 나 혼자 눈꽃을 받는데
재잘재잘 동무들 목소리 환천으로 들린다
어릴 적 동무들 옛모습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은파호수길